(원로 신년메시지)포스코 정명식 前회장

(원로 신년메시지)포스코 정명식 前회장

  • 철강
  • 승인 2017.01.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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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방정환 jhb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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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뒤처지면 도태…기술 개발, 경쟁력 확보에 사활 걸어라”
“과거에도 항상 어려웠지만 항상 극복“
“舊 세계 최대 US스틸 흥망성쇠에서 시사점 찾아야”

 “최근의 경제상황이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철강산업은 당분간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철강산업은 항상 어려움에 처해 있었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오면서 위기 극복의 DNA가 세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다”
 
 한국 철강산업 발전의 계기가 됐던 포항제철소 건설의 책임자이자 제3대 포스코 회장을 역임했던 정명식 전 회장(현 포스코중우회 회장)은 한국의 철강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지만 이러한 위기 상황일수록 ‘1등 경쟁력’ 유지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저성장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지만 저성장을 걱정만 할 것이 라니라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어떻게 잘 끌고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정 전 회장은 충고했다.

▲ 정명식 前 포스코 회장

 
 지난 연말 포스코중우회 사무실에서 만난 정 전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오랜 기간 벗어나 있었지만 철강산업과 경제 전반을 꿰뚫는 혜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수많은 실패의 경험이 쌓여 만든 포항제철
 
 지난 1993년에 박태준 초대 회장과 황경노 회장에 이어 제3대 포스코 회장에 취임한 정명식 전 회장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사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중에 당시 포항제철 박태준 사장으로부터 한 번 보자는 연락을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토건부장으로 포항제철에 입사해 건설본부장, 부사장, 사장, 부회장, 회장에 올라 포항제철과 광양제철 신화를 직접 쓴 인물 중 하나다.
 
 그런 정 전 회장은 “포항 1기 설비 건설 당시 우리나라의 건설기술 수준은 제철소는 커녕 고층 빌딩 짓기도 어려울 정도로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었다”면서 “오죽하면 광화문에 빌딩 하나를 짓는데 현대건설이 하청을 받아 일을 할 정도였으니 제철소를 건설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무 것도 모른 채 더듬거리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영일만의 신화’ 포항제철을 성공적으로 건설함으로써 우리나라의 토목건설 기술 수준이 짧은 기간에 급성장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때까지 국내에서 그렇게 깊이 땅을 파본 일이 없었고, 굴착한 곳에 물이 차오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포항제철의 건설이 우리나라 토목기술을 확립해 나가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것이 정 전 회장의 전언이다. 그야말로 모든 일을 대부분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에 시행착오가 불가피했다. 어쩌면 시행착오가 매순간 실패의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수많은 실패의 경험들이 쌓여 ‘과업 완수’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 “항상 위기의 연속…그래도 해냈다”
 
 결국 포항제철의 성공 신화는 이러한 어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함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다지면서 경쟁력을 차곡차곡 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계 최고의 제철소라고 평가되는 광양제철소까지 만들어 질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제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관제철소는 현대 사회가 개발하고 축적한 모든 과학기술의 총망라되어 만들어진다. 토목에서부터 건축, 기계, 전기, 금속, 화공, 전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가 어우러져 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포항제철의 건설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으로 빗대어 표현한다.
 
 이러한 성공 신화는 박정희 대통령의 굳은 의지와 박태준 사장(당시)의 추진력이 합쳐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정 전 회장은 설명했다. “포항제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회사의 일이 아니고 국가 중요 프로젝트의 하나였기 때문에 진행될 수 있었다”면서 “고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은 포항제철 사업에 자기 모두를 바친 사람이었다. 특히 박 대통령은 박태준 사장(당시)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정 전 회장은 ”철강업의 사양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지구상에는 여전히 연간 15억톤 이상의 철강수요가 있고, 여전히 완만하게나마 증가하고 있다“면서 ”기술적인 부분에서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경쟁력만 있으면 수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상공정 분야에서의 경쟁체제에 대해서도 역기능 보다는 순기능이 커서 국내 철강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바람직한 경쟁을 통해 국내 철강산업계를 선순환적으로 이끌어 갈 것을 주문했다. 정 전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아래에 정리했다.

 ▲ 최근 철강업계가 가격이 오르면서 좋아 보이지만 산업 자체는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위기, 위기”라면서 과거 50년을 살 정도로 우리 철강산업은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포스코도 위기가 아닌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위기의식이 있었기에 현재의 발전된 모습이 가능했다고 본다.

    우리나라 철강업계는 오일쇼크, 금융위기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Profitable Product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예전에도 생산이 수요보다 많아서 수출을 해야 했는데 항상 위험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수출을 많이 하니 포스코를 비롯해 대한민국 철강사가 불공정 하다는 세계 각국의 위협에 늘 놓여 있었다.

    미국에서 반덤핑이나 상계관세도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나. 한때 미국의 철강업계는 유럽보다도 베세마 제강법을 먼저 도입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며 세계 철강시장을 선도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기술투자를 안했고, 일본에서 LD제강법을 가장 먼저 도입하면서 시장 주도권을 뺏겼다. 그러면서 일본이 미국으로 철강제품을 대량으로 수출하면서 미국 철강산업이 무너지게 됐다. 당시 미국 철강업계가 현실에 안주하면서 일본에 역전을 허용하게 된 것이다. 과거 세계 최고의 철강사였던 US스틸의 흥망성쇠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포항제철을 만들던 당시에는 아무 것도 없던 척박한 환경이었다. 당시 어려움을 이겨냈던 에피소드 몇 가지를 소개해 달라.

 △ 포항제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회사의 일이 아니고 국가 중요 프로젝트의 하나였기 때문에 진행될 수 있었다. 특히 선두에서 이끌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은 포항제철 사업에 자기 모두를 바친 사람이었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내각의 부총리, 각부 장관, 경상북도지사 등 모든 행정조직의 힘이 포항제철 지원에 집중됐다.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포항지부를 만들어 현장 애로사항을 듣고 지원을 하기도 했다.

    유명한 마패사건은 박 대통령의 굳은 의지와 박태준 회장의 단단한 추진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모래 위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모든 직원들도 국가 백년대계를 완수하려는 사명감에 각자 자기 위치에서 맡은 책임을 다하려고 애썼다.
 
 ▲ 포항제철 건설본부장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에 무거운 책임감 있지 않았나?

 △ 본인은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마치고 ICA 원조로 외국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당시 유학 중에 US스틸이 세계 최대의 냉연공장을 짓고 있었는데, 토목저널에 많이 소개돼 철강산업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후 귀국해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사장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박태준 사장이 “한 번 갑시다”라는 말에 포항제철이라는 대역사에 합류하게 됐다.

 토건부장으로 입사해 현장에 갔더니 아무 것도 없이 황량한 모래바람만 불었다. 토목공사는 우선 땅을 파는 일이고, 땅을 파면 물이 나오니까 이것을 또 처리해야 하는 일이다. 제철소 단위공정이라는 것은 당시로서는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광화문에 빌딩을 지을 때 현대건설이 하청을 받을 정도였으니 제철소를 건설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무 것도 모른 채 더듬거리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토목공사는 자재, 인력 등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필요한데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으니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시행착오의 연속이던 시절이었다. 어떻게든 빨리 배우고, 조치하고, 적응하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제철의 일은 박태준 사장이 현장에서의 건의사항을 지체 없이 받아들이고 실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령 건설공사를 적정가격 입찰로 진행했다고 하면 포항제철소 건설은 쉽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건설사들에게 선시공 후지불 방식을 적용했는데, 이 방식은 특혜 시비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고, 표준품셈도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리원칙만 적용하면 리스크가 오히려 더 켰다. 외국에서는 그런 방식이 통용됐지만 당시에도 조달청이 있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혜 시비가 있으면 감사원에서 난리 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리스크 요인에도 선시공 후지불 방식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박태준 사장이 목숨 걸로 진행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전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20여년 포스코에서 근무하는 동안 포항과 광양제철소 건설을 지휘했는데, 선시공 후지불 방식을 적용하여 잘하는 건설사들은 특정분야 공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한 특혜나 착복 하는 일이 없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오히려 포항과 광양에서의 실적을 바탕으로 건설사들은 해외 진출의 계기로 삼기도 했다. 포항제철 건설공사에서 부정비리가 없었다는 것은 지금에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이다.

 

 
 ▲ 이제는 현대제철로 인해 국내 철강시장도 경쟁체제가 갖춰졌다. 이 때문에 포스코가 위협받고 있다고 하지만 포스코의 자동차강판 국내 판매량은 줄었어도 경쟁 체제 이후 글로벌 1천만톤 판매에 다가설 정도로 새로운 기회요인이 되고 있다.

 △ 독점시장은 항상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쟁체제가 됐다는 것은 당사자로서는 힘든 일이겠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경쟁체제가 되면 결국 소비자가 덕을 보게 되는데,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두 회사가 앞으로도 경쟁을 잘해서 좋은 방향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포스코는 살기 위해 해외에서 활로를 찾지 않았나. 기업이라는 생물도 경쟁에서 떨어지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항상 위기라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 강화하고 있는 것은 좋은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파이넥스의 경우, 투자한 지 30년이 넘었고 지금도 계속 투자하고 있다. 어쩌면 바보스럽기까지 하다. 전 세계에서 이런 철강사가 없지 않나? 전통적인 고로기술이 오히려 더 빠르게 발전하면서 파이넥스는 파이넥스대로, 고로는 고로대로 각각 발전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 철강대국 중국과의 경쟁도 걱정된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중국 전체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우리는 일본 NSSMC JFE스틸, 중국의 바오우강철, 안산강철 등 주요 회사들과 경쟁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과는 양적으로 싸울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싸워야 한다. 중국 철강사들이 포스코를 목표로 성장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는 포스코가 최고 경쟁력을 갖춘 철강사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철강 수요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만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철강 수요가 늘고 있어서 글로벌 철강수요는 점진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경쟁 상황에서 살아남는 회사는 결국 기술력이 앞서고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경쟁력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되는데 최종적으로는 가격이 될 것이다. 아무리 품질이 뛰어나더라도 가격 경쟁력에서도 밀리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철강인 후배들을 격려한다면?

 △ 후배들이 지금 잘하고 있다. 실적이 지표상으로는 좋아지지 않았나. 실적 보다는 ‘사기’와 ‘기강’에 대해 걱정했는데, 최근에 모처럼 광양제철소를 방문하면서 현장에서 젊은 직원들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본인이 근무할 당시보다 직원들의 눈빛이 더욱 살아있음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회사의 장래성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 최근 권오준 회장이 연임을 신청했는데…

 △ 회사 OB 중 하나로서, 회장 선임이 이사회 시스템에 의해 제대로 이뤄지고 선임된 회장이 정해진 임기로 제대로 일한 후에 퇴임할 때 자기가 추천하는 후보를 추천하는 시스템이 정착되도록 힘써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CEO 혼자서는 못하는 일이다. 사회 전체가 도와줘야 한다. 재벌은 오너가 있어서 안정적이고, 포스코는 오너가 없어서 경영이 불안하다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인식인가? 제발 회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서 CEO가 선임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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