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후판업계는 언제까지 양보만 할 것인가?

황병성 칼럼 - 후판업계는 언제까지 양보만 할 것인가?

  • 철강
  • 승인 2020.09.1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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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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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讓步)가 진정 미덕(美德)이 될 수 있을까?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양보는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상대방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없이 희생만 강요하는 양보는 미덕이 아니다. 촛불이 제 몸을 불 살라 어둠을 밝히지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미물의 운명처럼 희생하는 양보는 무의미하다. 우리 후판업계가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후판 생산업체들은 해마다 좌불안석이다. 최대 수요처인 조선업체들 눈치 보느라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한다. 국내외 경기 침체로 형편이 좋지 않은 것은 서로 마찬가지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이기에 상생(相生)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해마다 가격 협상에서 조선업계로부터 양보만 강요당한다. 상대의 어려움은 배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요구로 후판 생산업체는 적자가 눈덩어리처럼 불어났다.

수출규제로 일본과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관광을 자제하고 불매운동을 하는 등 국민들의 대응이 눈물겹다. 하지만 조선업계는 오히려 일본산 후판 수입 비중을 늘리며 국내 업체를 옥죄고 있다. “일본산처럼 가격을 내려주면 언제든지 구매할 것”이라는 논리로 급박하기가 일쑤다. 이에 후판 업계는 올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인하해 주었다. 언론들은 이 결과를 미화해 ‘조선업계와 고통 분담’으로 기사 제목을 달았다. 

이 제목은 적절치 않다. 철강업계는 지금 코로나19 영향으로 수요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철광석 가격이 급등하며 깊은 늪에 빠졌다. 조선업계가 수주절벽에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철강업계의 어려움도 이에 못지않다. 해마다 늘어나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설비 가동을 중단해야 할 판이다. 실제로 동국제강은 지난해 8월 포항 2후판 설비 가동을 중단했다. 종국에 설비 가동이 모두 중단되면 그 피해는 온전히 누구의 몫이 될지는 분명하다.

사실 국내에서 후판은 공급부족 제품이었다. 조선 산업이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을 따라잡고 중국과 격차를 벌리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이에 조선 업체들은 많은 후판이 필요했고, 그들의 요구로 2009년 이후 철강업계의 설비 신증설이 이뤄졌다. 오로지 조선업계를 위한 통 큰 투자였다. 소재 수급난이 심각했던 당시 설비 신증설은 조선업계의 숨통을 트여주고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수요가가 필요해서  투자한 첫 사례이기도 했다. 

우리 업계는 이러한 역사를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 조선업계의 행태가 서운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 과거 그들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철강업계는 가격을 동결해주며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손해를고스란히 감수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조선업계는 옛날 일은 다 잊은 듯 하다. 일본산 저가 제품을 협상 수단으로 내세워 심한 모멸감까지 주고 있다. ‘마지못해 또 양보’라는 한 언론의 제목처럼 후판업계는 명분 없는 협상 결과를 또다시 곱씹어야 했다.    
 
믿음과 의리는 가장 가치 있는 삶의 방편이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도움을 주었다면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 것이 도리다. 세상이 아무리 배금주의가 팽배하다 해도 상도의(商道義)는 지켜져야 한다. 이것을 저버리면서 ‘나만 살면 된다’는 수요업계의 이기주의적인 행태는 배척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조선업계 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전업계도 마찬가지다. 

상생(相生)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있다.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자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두 업계의 가격 협상 결과를 보면 이 뜻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후판 업계는 가격 인하로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뼈를 깎는 원가절감과 신기술, 신제품 개발 등이 뒤따라야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보’라는 단어를 더는 떠올리지 않는 강한 경쟁력을 갖춘 업계로 거듭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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