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자가 우주를 지배한다

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자가 우주를 지배한다

  • 철강
  • 승인 2021.06.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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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박진철 기자 jcpark@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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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 영화의 기대작 ‘듄(Dune)’이 코로나19 때문에 아직 개봉을 못 하고 있다. 
 
 ‘듄’은 ‘컨택트’와 ‘블레이드 러너 2’로 잘 알려진 드뇌 빌뇌브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샬라메, ‘스파이더맨: 홈 커밍’의 젠데이아 콜먼, ‘아쿠아맨’의 제이슨 모모아가 출연해 세계 영화 팬들을 설레게 한다.
 
 영화 ‘듄’의 원작으로, 프랭크 허버트(Frank Herbert)의 역작 장편소설 ‘듄’은 ‘스파이스(Spice)’라는, 우리말로는 향신료(香辛料)로 번역되는 자원을 두고 펼쳐지는 권력 갈등을 흥미롭게 그렸다. 
 
 ‘듄’은 우리말로 모래언덕 즉 사구(沙丘)를 뜻한다. 스파이스를 빼면 하등 이로울 게 없는 변방의 모래 행성 아라키스가 바로 ‘듄’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다. 스파이스는 일종의 음식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적 능력을 높여주는 기능성이 있다. 책에서는 컴퓨터와 같은 과학기술이 사리진 시대, 별과 별을 오가는 우주선 항법사들이 정교한 워프(Warp) 항행에 필요한 연산을 해내기 위해 정신적 활동을 최고조로 이끌어주는 이 ‘스파이스’를 수시로 복용한다. 행성 간 이동이나 무역, 외교 등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원료 또는 연료의 기능을 이 스파이스가 맡고 있는 것이다. 

 프랭크 허버트는 스파이스에 관한 모티브를 18세기 유럽에서 향신료를 인도에서 구해오던 때에 나온 "향신료를 가진 자가 유럽을 지배한다"라는 말에서 얻었다고 한다. 18세기 유럽은 향신료가 많이 필요했지만, 인도와 유럽 사이의 거리가 멀어 공급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향신료는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단순히 향신료를 넘어 우주여행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인 스파이스의 가치는 그 값을 따지자면 한이 없다. 
 
 그래서 작품에는 스파이스라는 자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희소성과 소유권 문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시장에 미치는 효과 등이 각 권력의 싸움을 통해 극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원을 둘러싼 권력 암투 과정에서 소설에는 캐치프레이즈와 같은 문구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자가 우주를 지배한다.”, “스파이스는 흘러야 한다.”와 같은 대사들이다. 
 
 요즘 글로벌 철스크랩 시장을 보면 이 스파이스와 듄의 세계가 떠오른다. 마치 철스크랩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 철강산업을 지배한다는 느낌이 들면서 말이다. 
 
 글로벌 기후 변화의 위기 속에 탄소 중립(탄소 순 배출 제로)이라는 어마어마한 도전을 위해 세계 각국이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자원이 바로 철스크랩이다. 철스크랩을 녹여 새 철강 제품을 만드는 전기로 조업 방식은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는 고로 방식과 비교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자 최대 철스크랩 소비국인 중국은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해 노후화된 고로를 폐쇄하고 전기로를 증설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철스크랩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올해부터 철스크랩 수입을 재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글로벌 수급 이슈로 철스크랩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유럽(EU)과 러시아 등지에서 철스크랩 수출을 제한하자는 성명이나 수출세를 인상하는 움직임이 있는 등 글로벌 철스크랩 자원 경쟁 속에 철스크랩 자원 확보를 위한 움직임도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 귀중한 자원인 철스크랩의 국내 자급도는 아직도 8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마저도 코로나 영향으로 수입이 줄어든 지난해와 올해 들어 급등한 경향이 있다. 등급별로 자급도에 차이가 있고, 제강사의 수급 정책에 따라 철스크랩 수입이 아예 사라질 수는 없어 자급도 100%를 현실적으로는 이미 달성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탄소 중립이 시대의 흐름이 된 상황에서 철스크랩 자원 확보와 국내 철스크랩 자원 보호를 위한 움직임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자급도 100%를 넘어 철스크랩 수출을 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철스크랩 자원 확보를 위한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연일 수밖에 없다. 집토끼만으로 공급이 확실하지 않은데 산토끼를 포기할 수도 없는 만큼 철스크랩 수입이 아직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야말로 철스크랩 자원 확보를 위한 꼼꼼한 대응이 절실한 때이다. 
 
 철스크랩은 흘러야 하지만, 철스크랩을 지배하는 자가 탄소 중립 시대의 철강산업을 지배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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