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의인(義人)이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황병성 칼럼 - 의인(義人)이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 철강
  • 승인 2022.01.2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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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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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煩惱)는 불교에서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욕망이나 분노 따위의 모든 망념(妄念)을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해탈(解脫)하려면 이 번뇌 망상을 끊어야  한다. 이에 모든 괴로움의 근본이 되는 탐욕·성냄·어리석음 등의 근본번뇌(根本煩惱)와 이에 따라 일어나는 게으름·불신·경망스러움·교만 등 20개 정도의 수번뇌(隨煩惱)가 있다. 결국 불교의 이상은 이러한 번뇌를 극복함으로써 열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번뇌를 넘어야 비로소 의(義)로운 마음이 생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물의 삶을 생각하고 기린다. 특히 의로운 삶이라면 더욱 그렇다. 옛날에 살았던 사람도 그렇고 현대를 살다 간 사람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사회 정의를 위해 희생한 삶은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현재 우리의 삶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온갖 번뇌 망상으로 점철돼 있기 때문이다. 의로운 삶에는 탐욕도 없고 성냄도 없다. 어리석음도 없고 교만함도 없다. 오로지 옳은 행동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의인(義人)이라고 부른다. 

옛날 의인을 생각하면 논개를 첫 번째로 떠올린다. 전란 속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그녀는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기리는 의인이다. 우리는 그녀의 죽음을 통해 민족의 슬픈 역사를 생각했고, ‘희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을 강물에 흘리며 그녀는 의롭게 스러졌다. 이 여인에게 번뇌는 차라리 사치였다. 오로지 조국만 있었으니 그 희생이 한없이 가엽다.

또 다른 의인은 2001년 도쿄 신오쿠보 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희생된 이수현이다. 그날 그가 보인 용기 있는 행동은 지금도 한일 양국에서 추앙(推仰)받는다. 국적을 뛰어넘는 그의 희생정신이 숭고한 것은 이유가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일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위는 생각지 않고 취객을 구하고자 선뜻 철로로 뛰어든 것은 의로운 생각의 발로였다. 우리가 그에게 죄스러운 것은 그의 행동을 한일 우호 물꼬를 트는 계기로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같이 훌륭한 생을 살다 간 의인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후세의 도리다. 또 그 의로운 삶은 현재 우리 삶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다행히 이러한 취지를 살리고자 하는 기업이 있어 관심이 간다. LG복지재단의 LG 의인상과 포스코청암재단의 포스코히어로즈 펠로십 선정이 그것이다. 이 상은 기업이 사회적인 책임을 충실하려는 취지가 담겼다. 고인이 된 박태준과 구본무 두 회장의 의지와 뜻도 담겼다. 국가와 사회 정의를 세우고자 했던 두 회장의 유지이기도 하다.  
 
특히 포스코히어로즈는 위기의 순간에도 도움을 아끼지 않는 의인들을 선정해 정의로운 사회구현에 앞장서고 있다. 2019년 제정돼 현재까지 49명이 선정되면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대상은 공직자나 일반시민이었고, 그들의 의로운 행동은 귀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LG 의인상도 169명이나 받을 정도로 기업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수상자들의 의로운 행동도 남다르다. 그들의 타인을 위한 배려는 우리의 삶을 부끄럽게 만들고 성찰하게 한다.  

이렇듯 의인은 쉽지 않은 길을 가기에 존경받는다. 때로는 호도(糊塗)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정치권이 대표적이다. 선거에 도움을 주는 유리한 제보를 한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의인이라고 추켜세운다. 정파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정치라고 하지만 의인은 아무 데나 붙이는 단어가 아니다. 그 숭고한 뜻을 곡해(曲解)해서는 절대 안 된다. 살신성인의 기본적인 요건도 갖추지 못한 행동을 두고 의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인간의 기본적인 소양이다. 당연히 옳다는 판단에서 의로운 행동이 나온다. 이 행동은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귀감이 되고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이에 LG복지재단과 포스코청암재단의 사회 공헌 사업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국가와 사회의 정의를 위한 지킴이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 좋은 뜻과 취지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의로운 사람이 존경받고 대우받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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