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문래동, 철강업계 영광 뒤안길에 묻다

(스케치) 문래동, 철강업계 영광 뒤안길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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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1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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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백종훈 기자 jhbaek@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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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차 찾은 8월 중순의 문래 철강유통단지 거리는 집중호우와 폭염이 휩쓸고 간 탓인지 평소보다도 조용하고 한산했다. 

70여년 전 처음 생겨나 최정점이던 1990년대 중반, 크고 작은 철강사 1천여 곳이 운집할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던 때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철강재를 실은 소형트럭이 간간히 지나는 것과  이동하는 사람들 몇몇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활력이 없어 보였다. 여름 휴가철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문을 연 곳보다 닫은 데가 훨씬 더 많다는 게 한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인적이 드문 골목들을 지나 옅게나마 쇳가루 냄새 풍기는 어느 한 유통업체를 찾았다. 가게문은 열려 있었지만 분주해 보이지는 않았다. 업체 대표는 "해가 지날수록 우리 쪽 일감이 줄어든다"며 "시대·지리적 특성과 코로나, 철강업계 불황 등이 맞물려 발생한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자평했다.    

업체 대표는 "시간이 미뤄지긴 했지만 이 곳은 이제 재개발 이슈에 묶여 있다"며 "과거의 영광은 잠시 접어두고 앞으로의 변화에 창작촌 골목 활성화 등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문래 철강유통단지가 속한 문래동 4가 재개발을 위한 위원회의 설립 요건이 최근 충족되면서 정비사업에 속도가 붙은 상태다.

(사진=문래 철강유통단지 거리와 문래 창작촌 골목)
(사진=문래 철강유통단지 거리와 문래 창작촌 골목)

철강업계에 따르면 국내 철강산업은 1980년대까지 국가 주도 하에 성장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민영화 과정을 거치며 자체 혁신력을 동력 삼아 성장했다. 이에 힘 입어 문래 철강유통단지도 1990년대 들어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문래 철강유통단지의 쇠락은 서울시가 1970년대 후반 내세운 '도심부적격 업소 외곽 이전 계획'을 본격화 하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1980년대 중반 시흥에 종합철재상가가 조성되면서 시흥으로 터를 옮기는 철강사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이후에는 시화나 광명으로 떠나는 업체들도 생겨나면서 단지 내 분산이 빨라졌다. 

여기에 문래동이 아파트 등 주거지역으로 바뀌면서 하향세는 점점 빨라졌다. 기술과 가업을 물려받을 청장년층의 유입이 없었던 것도 단지의 쇠락에 한 몫했다. 결국 지난 2001년에는 영등포 철강유통판매조합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와 관련해 업체 대표는 "단지 쇠락의 결정적 요인은 지속적인 경기 위축과 저가 수입재 유입의 증가라고 생각한다"며 "단지 쇠락의 현상을 지역적 현상으로 국한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 철강업계 전체의 흐름과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지 내 기존 업체들이 떠난 자리를 화려한 색감을 가진 창작촌 골목의 카페와 음식점들이 자연스레 채우고 있다"며 "이 곳을 비롯한 철강업계에 불어야 할 변화의 바람이 예상치 못한 방식의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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