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안전 불감증에 떨어진 꽃잎

황병성 칼럼 - 안전 불감증에 떨어진 꽃잎

  • 철강
  • 승인 2022.11.0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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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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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히 잊힌 얘기가 됐지만 새삼 한 사건을 소환해 본다. 앞날이 창창한 청춘이 안타까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일이 있었다. 그 사고 이후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필자의 뇌리 속에서는 아직 망각의 강이 흐르지 않았다. 2010년 하청노동자 한 명이 비명과 함께 세상과 이별했다. 부모와 형제들과 작별 인사도 없었던 허망한 죽음이었다. 한 철강사 용광로가 그의 무덤이었다. 한 떨기 장미였고, 코스모스였던 20대 청춘은 끝내 꽃을 다 피우지 못하고 스러져갔다.      

그는 용광로에 고철을 넣어 쇳물에 녹이는 작업을 하던 중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섭씨 1,600도가 넘는 펄펄 끓는 쇳물이 담겨 있었으니 시신도 찾지 못하는 죽음이었다. 양지바른 곳에 무덤이라도 썼더라면 망자에 대한 애틋함이 덜했을 것이다. 부모와 형제들의 마음이 그랬고, 동료들의 마음이 그랬다. 안전망이 확보되지 않은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유명을 달리한 청년의 죽음은 이래서 더욱 억울했다. 그리고 더욱 슬펐다. 그 후로도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당시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한 시인은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라고 읊조렸다. 그리고 ‘쇳물 부어 빗물에 삭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게 하게’라고 했다. 채 피우지 못한 꽃망울이 떨어진 것에 대한  애절한 표현이었다.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었다. 이 문제는 비단 우리 업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공통적인 문제이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최근 SPC계열사 제빵공장에서도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 교반기에 몸이 끼는 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충격적인 것은 사건이 발생한 당일 같은 층에서 제조한 소스를 사용한 샌드위치 4만 여개 전량이 시중에 유통됐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 직후 기기 작동은 중단됐지만 같은 층에서 수동으로 소스 배합 작업을 했고 그 소스로 만든 샌드위치가 물류센터로 전량 출고됐다고 한다. 인간의 탈을 쓰고 못할 짓을 한 뻔뻔함에 세상은 놀랐다. 국민들이 분노하며 불매운동으로 번진 이유다. 

가슴이 아파 거론하기도 조심스러운 이태원 핼러윈 참사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꽃다운 청춘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억울하게 죽었다. 왜 하필이면 젊은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억울한 심정을 호소해 보지만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현실이 아닌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 형제에게는 단장(斷腸)이 끊어지는 아픔일 것이다. 같은 부모 입장에서도 그 아픔이 전이돼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당신만의 자식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자식으로 그들의 안식을 기원한다. 그리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하며 어른들의 잘못에 용서를 빈다.  

지금도 전국 산업 현장에서는 근로자들이 각종 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한다. 올해 초 안전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무겁게 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유명무실한 법이 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1월 27일 이후 9월 말까지 발생한 중대재해는 443건, 사망자는 446명이었다. 하루 1.8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한다. 단순히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안전에 대한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함을 입증하는 자료이다.

설마 하는 안일한 생각이 문제다. 근로현장의 사망사고는 안전설비 점검 등 예방활동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가 많다. 이태원 참사도 충분히 예방 기능한데도 이것이 작동하지 않은 데서 발생한 인재이다. 안전 매뉴얼도 없었고 관계기관의 대책도 전무했다. 이러한 안일함이 많은 젊은이들을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됐다. 산업현장도 마찬가지다. 사업주나 근로자 모두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구호로만 그치는 안전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실천이 우선이고 습관화 돼야 한다. 그래야 안전 불감증이라는 고질병을 고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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