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고질병 고쳐야 한다
2008-09-18 정하영
통상적으로 수요가 감소하면 생산량을 줄여야 하고 새로운 수요공급 곡선의 교차점에서 다시 가격이 형성된다. 물론 가격은 그렇게 크게 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철강재의 공급곡선은 거의 일정하다.
따라서 수요가 감소하게 되면 교차점은 상당히 내려오게 된다. 바로 가격 급락 현상이다.
그런데 최근 세계 주요 철강사들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은 바로 공급 탄력성을 증대시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 시황이 나빠져 수요가 줄어든다면, 공급도 함께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최근 세계 철강시장의 새로운 트랜드인 가격의 강한 하방경직성(下方硬直性)이 현실이 되고 있다.
실제로 8월초 이후 세계 철강재 가격은 오랜 강세를 마무리하고 하락 전환되었지만 과거와 같은 급락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철강사들이 양 위주에서 질(수익) 위주로 마케팅 전략을 전환했음을 실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세계 철강수요가 예상 외로 꾸준하게 상당히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철강사들의 신 마케팅 전략은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국내 철강업계에서도 이러한 세계 철강시장의 새로운 트랜드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오랜 기간 양 위주에 길들여졌고, 특히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던 우리 철강업계로서는 그 새로운 트랜드를 지켜내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를 두고 모 철강인은 철강업계의 고질병(痼疾病)이라고 표현했다.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병인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고치지 못하는 탓이다.
시황과 가격 관련해서 나타나는 이 고질병은 한마디로 제품가격에 대한 부화뇌동(附和雷同)의 성격을 갖는다.
실제 국내 상당수 철강업체들은 시황이 좋아져 가격이 상승하면 너도나도 가격 올리는데 혈안이 된다.
그 이유가 원료 구매비용 상승이건, 공급부족에 따른 수급 탓이던 대부분의 철강사들은 가격을 올릴 구실을 찾고 또 그것을 반영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반대로 시황이 나빠져 가격이 하락할 때 이 고질병은 더욱 치명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판매가 부진해 경쟁이 심해지면 우선적으로 하는 일이 가격 인하경쟁이다.
또 가격을 내리다 보면 이익을 거두기 어렵고 그것을 통칭 ‘두께 베끼기’로 보전하려고 한다.
실제로 이런 일은 컬러강판 업계 등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적정 수준 이하의 ‘두께 베끼기’는 부실로 이어지기 쉽고 이는 곧 철강제품과 철강산업 전체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된다.
절대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이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우리도 세계 철강업계의 새로운 트랜드인 수익 위주의 마케팅 전략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것이다.
근원적으로는 경영진부터 실적관리의 목표(도구)를 바꾸어야 한다. 다시 말해 경영목표가 최대 생산판매량이 아니라 최대 이익이 되어야 한다.
적정 가동률을 유지하면서 최대 이익을 거두는 것이 최선이 되도록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물론 ‘두께 베끼기’와 같은 편법과 탈법은 결코 용인하지 않는 전제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