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판 과잉 시대를 준비하라

2009-01-06     정현욱

“기회는 준비된 두뇌를 편애한다.”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남긴 이 명언은 누구나 옳다고 공감하지만 또 누구든 실천하지는 못 하는 말이다. 그는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설파하기도 했는데, 그가 생각한 노력은 늘 준비하는 자세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달 30일, 뜻 깊은 행사가 하나 열렸다. 플랜트 업체인 삼성엔지니어링이 협력업체들을 모아 철강재 수급에 관한 특강을 개최했다. 플랜트 산업은 기계나 장치를 기술적으로 복합화해 생산자가 목적으로 하는 원료 또는 중간재, 최종제품을 제조할 수 있는 생산설비를 건설하는 것으로 원재료 50% 이상을 철강재에서 조달하고 있다. 때문에 건설업과 마찬가지로 철강 시황이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 날 모인 백여명의 기자재 업체 관계자들은 철강 수급, 가치사슬(Value chain)을 이해하지 못해 원가반영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해같이 철강재 가격이 천장과 바닥을 오갈 때는 장기적 전망은커녕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보다 큰 문제는 철강업체와의 관계다. 윈윈(win-win) 관계를 구축해 플랜트·철강재 수출에 보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음에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실 플랜트 산업 관계자들이 느끼는 자부심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오로지 사람과 기술로 승부하는 플랜트 수출은 지난해 수주액 규모로 약 500억달러에 달해 우리나라 무역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했으며 정부가 앞으로 핵심 육성할 계획인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철강업체들에게는 큰 떡이 아니다. 특히 플랜트 건설에는 후판, 강관 수요가 많지만 국내 후판 수급은 만성적 공급 부족, 무계목강관(탄소강)은 아예 국내에서 생산조차 되지 않는다. 후판은 지난해까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던 조선업체들이 대량으로 쓸어간다. 이 들 플랜트 업체들은 국내 후판 업체를 상대로 수출역군이라는 자부심도 누른 채 ‘애원’하듯 구매를 하려고 해도 역부족이다.

 더군다나 플랜트업체들은 조선사들과 달리 다양한 규격의 소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철강업체들이 더욱 간과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플랜트 업체 구매팀 직원들은 하는 수없이 중국, 유럽 후판 업체에 아부까지 해 가며 원재료를 구매해 올 때는 참 마음이 쓰리다고 한다.

 하지만 철강업체가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포스코, 동국제강, 현대제철이 진행하는 후판 설비 증설이 마무리되는 2011~2012년부터는 수급이 안정적인 상황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조선용 후판 수요가 감소하면 공급 과잉 국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물론 또 감산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틈새시장이 버젓이 있고 그 틈은 더 커질 텐데 제살 깎기 식의 마지막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을까. 대신 기회를 잡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정현욱기자/hwc7@sn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