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이구택 회장, "존경과 아쉬움의 박수 속에 떠나다"

2009-01-16     김국헌

15일 포스코 CEO포럼이 열린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이날 포스코의 그 어느 기업설명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오후 4시로 예정된 설명회였지만 이미 자리는 3시반에 동이 나 앉을 자리가 없었다.

바로 전날인 14일 포스코 이구택 회장의 사퇴설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탓이다. 이번 CEO포럼은 단순한 기업설명회의 그것이 아니라 이구택 회장의 사퇴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였던 것이다. 사퇴설이 사실이라면 포스코 이구택 회장의 공식적인 마지막 자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인식한 탓인지 포스코 이구택 회장의 얼굴은 평소와는 달리 약간 상기돼 있었다.

첫 50분은 그저 무난한 기업설명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동희 부사장의 실적발표에 이어 질의응답 시간에서도 포스코 이구택 회장의 거취와 관련된 질문은 마지막이 되도록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질문하는 사람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분명 이날 모인 사람들에게나 이구택 회장에게 있어서나 '이구택 회장 사퇴'와 관련된 질문은 쉽게 묻기 힘든, 꺼려지는 질문이었으리라.

결국 모두가 원하는 질문은 맨 마지막에 가서야 나왔다. 5번째 질문자에 대한 답변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동시에 손을 든 6번째 질문자에게 기회가 왔고 모 언론사의 한 방송기자는 "오늘 오전 이사회에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진위 여부를 알고 싶다. 임기가 남으셨는데 사의를 표명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순간 장내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이구택 회장은 쓰고있던 안경을 벗었다. '올 것이 왔구나'라는 표정으로 …
이 회장은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지금까지 망설이신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일순간 풀어지는 긴장감. 이어지는 이 회장의 입장표명.
정리하자면 이 회장은 2007년도에 임기를 마치고 또 다른 3년이 시작됐을 때 오늘의 순간을 결심했었다고 한다. 전문경영인과 사외이사 제도에 대한 사회적 불신으로 지난 6년간 무척 괴로웠다는 심정적 고백도 곁들였다. 이러한 불신을 제거하기 위해 임기가 남았음에도 사퇴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 회장은 12월이 돼서 경영환경이 급작스럽게 나빠짐에 따라 그만두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걱정도 됐다고도 했다. 하지만 진정 어려운 이시기에 좀 더 젊고 새로운 리더쉽이 필요하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제가 CEO로써 말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그동안 여러분이 보내주신 성원에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이 이회장 공식석상의 마지막 말이었다.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이 회장은 고개숙여 좌중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참석자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그 박수는 기업설명회가 끝나면 나오는 평범하고 상투적인 박수가 분명코 아니었다. 6년동안 포스코 전성시대를 이끌며 마침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것으로 화룡정점을 찍고 정상에서 내려오는 철강거탑을 향한 존경과 아쉬움의 박수였다. 박수를 치는 기자 역시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박수칠 때 떠나는' 이 회장의 퇴장은 그간의 성과로 화려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쓸쓸하기도 한 그런 퇴장이었다.


김국헌기자/khkim@sn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