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라고 찾아올 때는 언제고…”
2009-04-20 심홍수
최근 은행권과 철강 유통업계의 관계를 보면 찬바람이 불 지경이다. 철강 유통업체의 잇따른 부도로 은행 지점장 여럿이 옷을 벗고, 새로 부임한 지점장들은 철강업체라면 손부터 내젓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은행권에선 유통업계가 ‘적지 않은 손해를 입힌 불량 고객’으로 비치고 유통업계에선 은행들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얌체로 보이는 모양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유통업계의 잇따른 부도는 은행권에 적지 않은 손실을 입힌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 추심을 담당하는 한 은행 관계자는 “철강의 철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난다.”라고 말할 정도다. 은행권에서는 유통업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탓하고 있다. 경영자로서의 책임감 없이 ‘경기 전망이 안 좋으니 돈 있을 때 사업 접고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시작하자!’라는 식이라고 주장한다.
부도가 나더라도 다른 일반 채무자의 채권은 이행하면서 금융 채권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냐며 불신의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고 있다.
유통업체들도 할 말이 많다. 지난해 상반기 유통업체들이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릴 때는 매일 같이 찾아와 대출 좀 하라고 하더니 정작 돈이 필요할 때는 외면하고 있다는 것.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은행에서 부추기는 바람에 돈을 빌려다 하치장 부지를 사들였는데 지금은 시황이 안 좋다 보니 대출 이자와 세금이 이중으로 부담되고 있다.”라고 말한다.
특히 정부가 아무리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내놔도 정작 은행에서 돈을 안 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기업들은 어려운데 은행들이 자기 부실 막는 데만 급급해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또 대출 자체도 어렵지만 대출해도 대출금리에서 다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CD(양도성예금증서)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이지만 은행에서는 가산금리를 높이는 방법으로 금리를 낮추지 않고 있다. 한 번 정해진 가산금리는 CD금리가 오르더라도 상환 때까지 계속 적용돼 대출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 경기 하강속도가 둔화되고 있다는 미 연방준비위원회(FRB)의 경기동향보고가 나오는 등 실물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불황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신의 앙금을 털고 윈윈 효과를 낼 수 있는 두 업계의 혜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