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가 최고선(最高善)이다

2009-05-13     정하영

국내 철강업계가 지금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요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최근 들어 그 요구는 점차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국내 철강시장이 전형적인 공급자 시장(Seller‘s Market)에서 수요자 중심의 시장(Buyer’s Market)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급측면에서 독과점 상태를 유지했던 주요 제품들이 속속 경쟁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일시적 현상이지만 최근의 불황도 향후 다가올 수요가 우위 상황을 앞당겨 현실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요급감에 따른 철강사들의 가동률 급락은 수요자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일반적인 현상이 불황으로 인해 앞당겨진 모양이다.
철강재의 특성상 공급자와 수요가 간의 관계는 결코 일과성이 아닌 상호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동반자 관계다. 원자재를 좋은 품질, 낮은 가격에 구매해야 수요가들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납기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더욱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이번 불황에서 철강사들은 ‘생존’ 차원에서 극단의 판매구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국 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세계 각 국이 철강재 수입을 차단하는 보호무역주의로 급선회했다.

포스코 역시 가동률이 크게 떨어지자 수입재의 유입을 최소화 하고자 노력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냉연, 강관사들은 “없을 때는 수입하라더니 남으니까 수입하지 말라”는 요구는 너무 일방적인 것 아니냐며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좀 더 심한 반발심을 드러낸 경우도 있다.

신임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수요가들을 방문했다. 앞으로 고객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상징적 행동임에 분명하다. 동반자 관계의 바탕은 대화와 경청을 통한 상호 이해, 다시 말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최고선(最高善)이다. 이런 가운데 철강시장에서의 경쟁 현실화는 점차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열연강판만 보더라도 7월이면 동부제철이 새로운 공급자로 등장하게 된다. 시장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현대제철도 내년초부터 연산 350만톤의 C열연 가동이 임박해 있다. 현대제철이 C열연까지 가동하게 되면 그 생산능력은 최대 900만톤까지 커지게 된다. 포스코의 외판량이 800~900만톤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제 포스코의 시장점유율은 과거 100%에서 50%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세계 경제불황은 서서히 바닥에 도달한 느낌이다. 그 시기가 언제쯤 될 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벗어난 듯 하다. 점차 정상적인 시장 상황으로 복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와 함께 국내 철강재 시장도 본격적으로 새로운 경쟁체제에 진입하게 된다.
경쟁시장에서 상호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철강사의 앞날은 결코 밝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정하영기자/hyjung@sn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