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제조업이라지만…

2009-07-20     정현욱

편집국으로 어눌한 말투의 낯선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일본의 한 플랜트 업체에서 일한다는 L씨는 한국 철강 가격 동향에 대해 알고 싶다며 느닷없는 연락을 미안해했다. 기자는 그가 재일 한국인이라 발음이 다소 어색했음을 알아차리고 성의껏 응대했다.
얼마 후 그에게서 메일이 왔다. 친절한 답변에 감사했고 ‘감동’까지 받았다고 했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뭘 그리 고마워해 할까 의아해하다 그가 덧붙인 말을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L씨는 일본 회사에서 홀로 한국인으로 일하면서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잦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외국인이라고 잘 가르쳐 주지도 않고 한국 관련 정보는 많이 묻는데 정작 한국 사정에 대해서는 많이 뒤처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인임에도 한국 철강 정보를 직접 조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플랜트 업체 특성상 철강 제품 아웃소싱 업무를 할 때가 잦은데 주요 철강업체와 관련 단체, 협회에 직접 전화를 해서 물어도 다들 퉁명스럽게 대답을 해 매번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질문한 내용이 회사 기밀에 가까운 내용도 아니었다. 매호 본지에 공개되는 정도의 업체들 가격 동향과 시황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을 대표하는 철강회사, 기관은 왜 하나같이 퉁명스럽게 답변을 했을까.
기자가 나름 분석해 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하나같이 운 없게 불친절한 사람이 걸렸다.
둘째, 공교롭게도 다들 촌각을 다투는 바쁜 업무 중이었다.
셋째, 자기 업무와 별 상관도 없으니 심드렁으로 일관한 것이다. 사실 확률은 세 번째가 가장 높을 것이다.
그러면 기자는 매우 친절하고 한가롭고 그 일에 딱 맞는 정보를 가졌던 사람일까. 아니다. 차이는 그나마 기자가 가진 서비스 마인드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비스업체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지 기자로 처음 철강업계에 발을 디디게 됐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이 업계에 만연한 소위 ‘제조업 마인드’였다.
물론 철강업이 제조업이니만큼 당연하다. 하지만 철강업에서 제조에 포함되지 않는 업무도 상당히 많다. 제조업체들 역시 수요가 중심의 서비스 마인드를 키워야 한다고 이미 진부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그저 품질 좋은 제품만 만들어 공급하면 된다는 생각, 양과 형식을 따지는 딱딱한 태도로는 개인이나 기업이나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에 역부족이다.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 이란 말처럼 작은 행동 하나부터 고쳐 나가는 노력이 아쉽다.

정현욱기자/hwc7@sn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