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건설업계, 진정한 대화가 필요하다

2009-09-02     정하영

지난 3월부터 철강 시장 일각에서 전무후무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가격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철근이 그 품목이다. 지난 3월 대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구매대금 결제를 위한 세금계산서 수취를 거부하고 가격을 재조정한 후에야 계산서 수취와 대금 결제가 이루어지는 사후 정산제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건설사와 제강사 간의 철근 거래는 익월 세금계산서 발행 시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판매대금의 사후 정산제는 결코 정상적인 거래라고 볼 수 없다. 가격결정의 가장 기초논리인 수급마저도 이러한 사후 정산제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연히 대한민국 시장에서, 그것도 철강재 중 최종 소비제품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철근 시장에서 그것이 현실화되는 웃지 못 할 일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후 정산제는 실제로 철근 제조업체인 전기로 제강사나 유통가공 업체, 그리고 최종 수요자인 건설사 모두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판매대금이 제때 결제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해진 가격이 없다보니 할인이나 할증과 같은 비정상 거래가 횡행하게 됐다. 건설사들은 목적과 달리 경우에 따라 더 높은 가격에 철근을 구매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특히 유통업체들은 사후 결정된 가격에 따라 이익을 내거나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등 마치 도박판에 끼어든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웃지 못 할 비정상적인 거래가 현실화된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주된 원인은 거래 쌍방인 제강사와 건설사 간의 믿음과 신뢰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일과성 거래로 끝나는 소비재도 아니도 장기간 고정 거래가 불가피한 철근 시장에서 수요, 공급 양방의 신뢰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한 거래의 근간을 이루는 조건이다. 그런데 국내 철근 시장에서 거래 쌍방의 신뢰가 깨진 지는 이미 오래됐다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가격을 놓고 감정싸움까지 치닫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특히 생산원가를 좌우하는 주원료인 철스크랩(고철) 가격 급등으로 9월 철근가격의 인상을 시도하고 있는 제강사들에 대해 건설사들은 더욱 완고하게 가격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서로 엇박자를 놓고 있음이다.

양측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과 거래제한 행위로 각각 시정조치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도 양측 관계는 개선될 기미를 찾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마치 영원한 평행선인 기차 선로마냥…

이런 시기에 오랜만에 업계 일각에서 양측의 오랜 앙금을 해소하고 상생협력을 본격화하기 위한 첫발걸음을 놓기 시작하고 있다. 바로 격의 없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로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하는 것으로부터 대화는 시작될 수 있다. 또 대화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쪼록 그 첫 발걸음이 제대로 놓아져 건설사와 전기로 제강업계가 오해와 반목, 감정싸움을 끝내고 진정한 신뢰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기를 희망해본다.

정하영기자/hyjung@sn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