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 미(美)·EU시장 침체돼도 큰 걱정없다

2009-10-23     웹데스크

 
▲ 김영진 정책팀장

미국과 중동 수출 비중 3% 포인트밖에 차이 안나
중남미·중앙亞 수출도 급증
다변화된 지역·품목 덕분에 이번 위기에 한국경제 선방


선박의 '블랙박스'인 항해기록장치를 주로 생산하는 중소기업 ㈜시뮬레이션테크는 지난달 쿠웨이트 소방청으로부터 1300만달러짜리 소방선을 따냈다. 정유시설과 원유탐사시설이 밀집한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발생하는 해상화재를 진화하고, 불이 난 선박을 항구로 예인하는 시설까지 갖춘 배다. 비록 조선소를 임대해 39m짜리 배를 처음 만드는 것이지만, 회사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다. 이종훈 기획관리이사는 "세계 조선시장이 대체로 포화상태이지만 중동지역의 소방선, 준설선 같은 틈새 수출시장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서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까지 틈새시장을 뚫고 수출선을 다변화하고 있다. 덕분에 한국 수출은 마이너스 증가폭을 줄이며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9월 수출 증가율은 마이너스 6.6%를 기록, 작년 11월 이후 두자릿수 감소세를 벗어났다. 올해 1~8월 중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은 마이너스 22.5%로 1년 전에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34.7%)·대만(-31.7%) 등 주요 수출경쟁국보다는 훨씬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작년보다 달러대비 원화 환율이 30% 이상 떨어진 환율효과가 컸지만, 기업들이 수출시장을 종전의 선진국 중심에서 중동, 중남미 등 개도국으로 확대한 영향이 컸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 덕택에 이제는 미국과 EU(유럽연합)의 경기가 침체해도 한국 수출전선이 붕괴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일부 품목에만 집중됐던 수출상품의 편중 현상이 크게 개선된 효과도 있다. 다만 지금도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수출선을 더욱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변화된 수출선

과거에는 미국과 일본, EU(유럽연합) 등 선진국 경제가 어려우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1990년의 경우 미국의 수출비중은 29.8%나 됐고, 일본(19.4%)과 EU(15.4%)를 합치면 무려 64.6%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이 무너져도 한국 수출이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수출선이 다변화됐다. 현재 세 나라의 수출비중을 모두 합치면 30%다. 아세안과 중동, 중남미, 홍콩의 수출비중을 모두 합친 것(30.5%)보다 적어졌다.

특히 미국 수출비중은 올해 1~7월 중 10.7%로 하락했다. 수출비중이 각각 7.1%씩인 중동과 중남미를 합친 14.2%보다 훨씬 낮다. 일본은 이보다 더 낮은 5.9%로 수출 비중이 크게 축소됐다.

수출 비중이 낮아졌지만 미국에서의 수출 시장 점유율은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높아졌다. 지난 1~7월 중 미국에서의 한국상품 시장점유율은 2.7%로 작년보다 0.4%포인트 올랐다. 중국( 2.6%포인트)보다는 상승폭이 작지만, 0.6%포인트 점유율이 떨어진 일본보다 선방했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시장에서도 우리나라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 중 9.9%에서 10.2%로 상승했고, EU(유럽연합)에서도 0.9%에서 1.0%로 올랐다.


 ◆수출 품목도 다양해져

반도체와 섬유제품으로 요약되던 주력 수출상품도 휴대전화 등 IT(정보기술) 제품과 같은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확대됐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최대 수출상품인 섬유류는 현재 10위권 밖으로 밀렸고, 2000년대 1등 수출상품이던 반도체는 5위 수준으로 밀려났다. 대신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추게 된 선박 수출이 최근 최대 수출품목으로 떠올랐다. 올 1~7월 중 수출비중이 14.3%에 이른다. 대신 나머지 수출품목은 10% 미만으로 수출 비중이 고르게 변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엔 한 두 개 품목이 20% 안팎을 차지해 수출 편중현상이 심각했다.

그동안 기술개발에 힘입어 주력수출상품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휴대전화의 경우 국내업체들이 터치스크린폰 등 새 상품 개발에 나서면서 올 2분기(4~6월) 세계 시장점유율이 삼성전자의 경우 19.2%로 1년 전(15.4%)보다 3.8%포인트나 올랐다. 자동차 시장 역시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이 작년 5.4%에서 올해 7.5%로 크게 올랐다.



 ◆FTA의 힘

우리나라가 수출국가를 넓힐 수 있었던 데에는 FTA도 단단히 한몫 했다는 평가다. FTA가 체결되면 양국의 관세가 낮아지기 때문에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가 다소 유리한 측면이 있다. 칠레의 경우 2003년에 수출규모가 5억9000만달러에 그쳤지만, 2004년 4월 FTA가 체결된 이후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한 공업제품 수출이 급격히 확대됐다. 지난해 30억달러를 넘어서 5년 만에 5배 규모로 수출이 늘었다. 칠레에 대한 수출비중은 현재 0.6%안팎으로 유럽의 이탈리아(0.7%)와 맞먹는 규모로 높아졌다.

2006년 FTA가 발효된 싱가포르는 전년에 74억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이 지난해 130억달러로 거의 두배 수준이 됐다.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등 유럽 4개국 모임인 EFTA와의 FTA 효과도 컸다. 2006년 FTA 체결 이후 2.5배 수출이 늘어 지난해 25억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의 수출 동향을 보면 중국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중국 편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중국 편중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 한·EU를 비롯해 세계 각국과 FTA 체결을 더욱 확대해 시장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웹데스크/desk@sn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