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판 공급과잉, 과연 누구의 탓인가?
2011-10-31 에스앤앰미디어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다. 2008년, 아니 2009년까지만 해도 조선사들은 후판이 부족해 아우성이었다. 수주한 배의 납기는 다가오는데 후판을 구하지 못해 배를 짓지 못한다고 난리법석이었다. 조선사들은 물론 조선협회까지 나서서 생산업체에 후판 공급량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고, 정부도 후판 수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편을 들었다. 조선사와 정부는 궁극적으로 후판 생산능력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며 설비능력 확충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이에 기존 후판 생산업체인 포스코와 동국제강 모두 후판 공장 건설을 서둘렀다. 새로이 일관 제철사업자로 진입한 현대제철 역시 후판 공장을 건설했다. 국내 최대 철강사인 이 3사가 모두 조(兆) 단위 대형 투자인 연산 150만톤 내외의 후판 공장 건설을 결정한 것이다. 그 결과 2008년 말 연간 809만톤이었던 후판 생산능력은 2009년 1,139만톤으로, 그리고 2010년 말에는 1,389만톤까지 늘어났다. 종전 대비 연간 무려 580만톤이라는 엄청난 생산능력 향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이들 철강 3사의 후판 투자를 단순히 정부와 조선사들의 요청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각자 경영전략과 투자정책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하지만, 공급능력 확충을 강력히 요청했던 조선사들도 도덕적 책임감은 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현재 후판 생산업체들의 어려움이 커진 이유가 대부분 조선사들 탓이라는 것이 업계나 여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후판은 철강재 순수출 국가로 전환된 올해도 수입량이 급증했다. 9월까지 수입량은 362만톤으로 단순 계산하면 연간 480만톤으로 추정된다. 전년보다 약 80만톤 늘어난 것이다.
조선사들은 저가 중국산을 이유로 국내 후판 공급업체에 가격 인하를 종용했다. 모 공급사는 기준(base) 가격보다 무려 20만원까지 내려간 91만원에 선급재를 거래 한다는 소문도 있다. 그런데 조선사들의 국내 공급사 구매량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줄어든 것이 현실이다. 생산능력을 늘려 달라 해서 늘렸고, 가격을 맞추라 해서 맞췄건만 정작 구매는 더 낮은 가격의 해외 철강사로 넘어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의에 벗어난 구매결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후판 생산업체와 조선사의 관계는 결코 일과성이 아님은 모두가 잘 안다. 장기간 이어갈 관계라면 상호 신뢰와 협력이 진정으로 상호 윈윈(Win-win)하는 길이다. 조선사들 변화를 기대해본다.
더불어 철강업계에서는 이러한 도의에 벗어난 행위에 대해 업계가 한목소리를 내고 전달해야 할 한국철강협회의 활동이 미미함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번 철근 사태에 이어 비슷한 지적이 반복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