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어디가 얼마나 아프냐?
“아프냐? 나도 아프다.”
사랑하는 여인의 아픔을 걱정하는 예전 TV 드라마 유행어다.
글로벌 경기 불황 속에 산업계 전반에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철강과 비철금속 업계 대표 전문지인 본지에서 기자 생활을 한 지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시황이나 경기가 호황기 때만큼 좋다거나 회복됐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이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되려면 객관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아무리 곡진(曲盡)하게 어려운 사정을 하소연해본들 앞서 언급한 유행어처럼 사랑하는 여인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는 사내와 같은 이해를 정부나 거래처에서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비철금속 업계 관계자들을 만날 때 자주 듣는 어려움도 이와 관련이 깊다. 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의 협상이나 거래처와의 가격 책정에서 번번이 아쉬움이 남는 결과를 손에 쥘 수밖에 없다는 푸념이다.
최근 중소·벤처기업 전문 거래 시장인 코넥스에 상장한 알루미늄 업체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도 이러한 아쉬움을 느꼈다. 이 관계자는 해당 업체의 코넥스 상장을 위해 기업 공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업계 내 매출액영업이익률 순위나 생산능력 순위 등을 알 방법이 없어 엄청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실제 해당 업종을 영위 중인 코스닥 상장사들도 이러한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이들 업체의 사업보고서를 봐도 객관적인 업계 내 순위나 생산능력 순위는 알 수 없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이는 해당 업종과 관련한 조합이 사라지면서 최근 몇 년 사이 더욱 심각한 수준에 처한 상황이다.
더구나 해당 업종의 과당경쟁과 이에 따른 저가 수주, 업체 난립 등은 해를 두고 이어져 온 이야깃거리지만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너도나도 경기가 어렵다거나 경쟁이 심하다는 말을 하고는 있지만 어디가 얼마나 어려운지, 객관적으로 경쟁의 정도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보니 이해관계에서 떨어져 있거나 이해득실을 조정해야 하는 입장에서도 쉽게 도와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통증의 정도를 숫자로 물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픈 곳을 누르면서 어느 정도 아픈지 1에서 10 사이의 숫자로 말해 달라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경우다. 이는 주관적일 수 있는 통증에 대해 환자가 어디가 얼마나 아프다고 느끼는지 객관화하고 수치화해보려는 의료진의 노력이다. 이를 통해 진단이 내려지고 처방도 이어진다.
비철금속 업계를 비롯한 산업계 관계자들이 아프고 어렵다는 푸념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정말로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정부나 거래처, 협력사를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이해 가능한 통계나 자료를 모으고 만드는 데 더욱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