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채명신 장군과 김치 통조림
지난해 11월 25일 대한민국의 큰 별이 졌다.
故 채명신 장군.
파월장병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며 현충원 설립 사상 최초로 사병 묘역에 안장돼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전장에서는 뛰어난 지휘관으로, 민간인에겐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킨... 그리고 마지막까지 생사를 함께한 사병들과 함께하는 모습은 진정한 군인의 모습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
황해도 곡산 출신의 채명신 장군은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25전쟁에 소위로 참전, 유격부대인 백골병단을 지휘하며 야전군인으로 명성을 쌓았다.
육군5사단장 시절에는 5.16 쿠데타에 참여했지만 이후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부대를 원대 복귀시켰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세차례에 걸친 정계입문 권유를 물리쳤다. 유신 이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직언으로 눈밖에 나 대장 계급을 달지 못한 채 군복을 벗었다.
특히 채명신 장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당초 채명신 장군은 명분 없는 이 전쟁에 반대를 하지만 참전을 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2개 사단을 철수하겠다는 미국측의 압력으로 파월 국군 사령관을 맡게 된다.
베트남 전쟁에서 채명신 장군은 미군 휘하가 아닌 한국군 독자 지휘권을 관철했고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민심을 확보하는 등 숱한 공을 세운다.
이 전쟁에서 국내 철강업계의 기술 발전을 가져 온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김치 통조림 공수 작전이 그것이다.
지난 2013년 중앙선데이 포커스에 실린 채명신 장군의 인터뷰와 그의 회고록 ‘베트남 전쟁과 나’, 전기인 ‘불후의 명장 채명신’ 등에는 김치 통조림과 관련한 일화가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진행한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채명신 장군은 김치 통조림 공수를 이렇게 회상한다.
“월남전 당시 장병들이 김치를 먹고 싶어 했다. 그런데 고국에서 온 김치 깡통 뚜껑을 따자 핏물이 나왔다. 기술이 없어서 녹이 슬었던 거다. 나는 ‘여러분이 이걸 안 먹으면 2주 뒤 일본 김치가 도착할 것이고, 김치 값은 일본 사람 손에 간다’고 했다. 그러자 장병들이 ‘핏물이라도 먹겠다. 고국의 부모형제에게 돈이 가게 해 달라’고 했다. 나도 울고 장병들도 다 울었다. 박 대통령께 이 사연을 적어 보냈다. 그러자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질 좋은 김치 통조림과 군화, 군복이 공수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애국심으로 일어선 민족이다.”
<자세한 내용은 스틸마켓 5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