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공업체 탐방③ - 시흥 중앙철재유통상가

  “퇴근 후 허름한 술집에 앉아 갈매기 고기를 안주로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던 직장 동료가 그립습니다.” 라며 1980년대 시흥 중앙철재상가를 회고하는 백발의 한 사장님.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만큼이나 그동안 회사를 거쳐 간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이 애틋하게 떠오른다.

1980년대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996번지 앞 술집에는 유난히 주객들이 많았다. 온종일 철강재에 몸을 부대껴야 했기에 퇴근 후에는 막걸리나 소주로 칼칼한 목을 씻어내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면 목청껏 소리 높여 유행가 한 구절을 부르며 그날의 피로를 풀었다. 그것이 곧 건강한 내일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고 그들만의 즐거움이었다.

늘 허름한 작업복 차림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가난했지만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봉을 쪼개어 집 마련의 꿈을 꾸었고, 자식들의 성장을 보며 책임감에 한눈조차 팔 수 없었다. 그래서 퇴근 후 동료와 주고받는 소주 한잔이 꿀맛처럼 달았다. 때로는 허물없는 동료의 가슴 아픈 고민을 들어주며 함께 눈물짓던 그곳이 시흥 중앙철재유통상가이다.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996번지에 형성된 시흥 중앙철재유통상가는 1985년 5월 문을 열었다. 11만5,702㎡의 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된 23개 동이 있으며 위탁운영을 포함하면 총 25개 동으로 제조업체 대리점, 도매점, 소매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600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 데 이 중 철강 관련 업체는 300여 업체이다.

이곳에 입주해 있는 철강유통 및 가공업체들도 요즘은 속된 말로 ‘죽을 맛’이라고 지금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사업을 접는 사람이 늘었다. “무엇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느냐?”며 물어오는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공허한 웃음뿐이었다. 이러한 나의 가슴이 이렇게 답답한데 그들의 가슴은 아예 까맣게 타버렸을 것이다.

모두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적인 업체를 찾은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1동에 위치한 한 업체는 이 어려운 시기에 설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수요가의 요구에 따라 가공설비를 들여올 계획이라고 한다. 잘 되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노 코멘트”라고 잘라 말한다. 비결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여름휴가로 인적마저 끊겼던 이곳에 철강재를 실은 화물차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절적인 비수기가 끝나고 성수기를 앞둔 움직임이라고 한 직원이 귀띔했다. 육교 건너에서 지하철이 숨 가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시계는 여섯시를 알리고 있었지만 퇴근하는 근로자는 한명도 없었다. 일이 많아 야근하면 다행이지만 눈치를 보며 하염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집에서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