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대기업 단가인하 여전한 ‘갑질’…속수무책 ‘뿌리기업’
중소 협력업체 60%, 부당 단가결정 무조건 수용
#.
선박부품 제조업체 A사는 단가협상을 할 때면 대기업 구매담당자로부터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제시받고, 사정 반·협박 반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
의류잡화 부자재 제조업체 B사는 대기업으로부터 단가 인하를 위해 연매출에 육박하는 고가의 장비를 구입토록 요구받았다. 여기에 B사는 원청사인 대기업이 제출한 견적서대로 납품하고 있다.
#.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C사는 매년 3%의 단가인하를 조건으로 대기업과 계약했다. 원텅사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거래보장을 전제로 계속 단가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새 정부가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정책을 펼치겠다고 공언했지만, 대기업의 단가인하 등 ‘갑질’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뿌리기업을 비롯한 상당수 중소제조업체들이 대기업의 일방적인 단가인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는 납품단가 협상이 연초에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점을 감안해 지난 2개월 간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하도급거래 부당 단가결정 애로조사’를 실시했다며 22일 이같이 밝혔다.
이번 조사 결과 올해 부당 단가결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업체 중 35%가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단가를 결정한 후 합의를 강요했다고 응답했다. 지속적인 거래관계 보장을 전제로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결정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23.3%나 됐다.
대기업의 부당한 단가를 결정은 ▲과도한 가격경쟁(58.1%) ▲경기불황(14.0%) ▲업계관행(11.6%) 때문인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뿌리기업 등 대다수 협력업체들은 부당한 단가결정에도 별다른 대책 없이 수용(62.8%)하는 경우가 많아 대기업의 가격경쟁에 따른 부담이 고스란히 협력업체로 전가되고 있다고 중기중앙회는 설명했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제조공정 개선을 통해 부당 단가결정에 대응하는 업체는 9.3%로 파악됐다.
아울러 전체 조사대상 업체의 14.3%가 부당 단가결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 업종별로는 조선업이 19.3%로 가장 높았으며, 전기·전자(15.9%), 자동차 (13.3%) 순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불공정거래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협동조합이 회원사들을 대신해 납품단가 협상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도급법을 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이사장 사병문)은 회원사를 대신해 단가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나, 수요대기업들의 비협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병문 이사장은 “조합이 적정한 납품단가가 책정을 위해 협상에 나서고 있지만, 대기업들이 비협조적이라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소중앙회 김경만 경제정책본부장은 “대기업은 일방적인 단가 인하보다는 공정한 방법을 통해 협력업체와 함께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협상시기는 1월(50.6%), 12월(14.9%), 3월(11.9%)이 많았으며, 협상주기는 수시(50.3%)로 협의하거나 1년 주기(40.3%)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