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전쟁을 이야기할까

2024-04-15     이형원 기자

“올해는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지난해보다 더욱 안 좋은 상황이다.”“정말 어렵다.”

‘좋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철강업계를 취재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어렵다’였다. 어느덧 어렵다는 말은 인사가 됐으며, 누구를 만나도 “올해도 어려우시죠?”라고 묻게 된다. 

철강산업은 기초 소재를 다양한 수요업계에 공급하는 일을 한다. 건설 현장에 철근을 납품하고 자동차회사에 차량용 강판을 판매한다. 거대한 선박은 온통 철로 구성돼 있다. 결국 철강은 건설과 자동차, 조선 등 수요산업 업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렇다 보니 철강업계 홀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도 전방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렵다. 다수 유통대리점은 수백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려도 남는 것은 수억 원에 불과하다고 푸념한다. 

대한민국의 산업화 시기를 기억하는 이들은 과거 영광을 잊지 못하고 현재를 안타까워한다. 이제 막 생산돼 이글이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철강재가 쉴 새 없이 출하되던 광경을 자랑스레 늘어놓는다. 

오늘날의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돌파구가 없다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그저 근근이 견뎌 먹고 사는 수준”이라고 철강산업을 평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상 유지만 해도 성공이다”라고 답했다. 

철강산업은 결국 외부의 강한 충격에 기댈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물동량이 멈추고 철강 수급 균형이 무너지자, 철강재 가격은 급격하게 올랐다. 당시 다수의 철강기업이 1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본의 아닌 수혜를 입은 바 있다. 

기자가 만난 일부 관계자들은 ‘전쟁’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도 했다. 결코 전쟁이 일어나선 안되지만, 오죽하면 그러겠냐는 푸념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