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국형 수소환원제철기술 도입 필요성
이상호 포스텍 수소철강연구소(HySRI) 소장 / 포스텍 친환경소재대학원 교수
에피데믹(Epidemic)과 팬데믹(Pandemic), 이 용어의 차이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코로나 바이러스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상황과 약 10여 년 전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했던 치명적 에볼라바이러스를 기억할 것이다. 전염병의 확산 범위를 지역적 혹은 대륙을 넘어선 영향권인지를 구분하기 위한 용어이다.
철강 산업은 수년 전까지는 연·원료, 시장, 기술 등의 편재성 때문에 특정지역이 갖는 에피데믹 이슈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철강업에 관한 가장 큰 도전은 탈탄소에 관한 것이며, 이른바 전 세계 철강 산업의 CO₂ 감축은 팬데믹 이슈가 되었다.
대한민국 철강업은 2018년을 기점으로 연산 7천만톤 수준에서 지속적 하락하고 있으며, 중국 철강업의 급부상과 이에 따른 과잉생산,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 그리고 전 산업의 탈탄소 압력 등의 3중고에 처해있다. 이러한 급격한 환경변화의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 철강 산업은 지난 50년 이래 가장 높은 경쟁력을 확보한 위치에서 역설적이게도 탈탄소 전환이라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해 있다.
반면 미국, EU 등 주요 철강수입국은 철강의 탈탄소를 매개로 지난 수십년간 운영해 오던 글로벌 밸류체인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산업정책 부활과 높아진 관세정책에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가세하고 있다. EU의 경우, 2026년 1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할 예정이고, ‘그린딜’ 연계 철강 탈탄소화 기술, 설비투자 지원확대에 방안을 포함하여 EU 총예산의 30%인 853조 원을 배정하였다.
미국 또한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을 시작으로 모든 제품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청정경쟁법(CCA, Clean Competition Act)을 발의했으며, 미국 에너지부는 철강을 포함한 8대 탄소배출 집약 산업 33개 프로젝트에 60억 달러 중 15억 달러 보조금 지원을 6대 철강 프로젝트에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2023년 5월 GX(Green Transformation) 법안 통과에 의거 GX 실행 과정에서 민간기업 단독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사업에 대한 지원 기금을 조성하였다. 특히 전체 산업의 기반이 되는 철강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리딩’을 위해 GI 철강 분야 예산을 1,935억 엔에서 4,499억 엔으로 2.3배 증액하였다.
주요국들이 철강 탄소중립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 기반이 되는 소재를 공급하는 철강이 밸류체인의 상위를 점하여 미래 2050 탄소중립사회에서도 자동차용 전기강판 등 탈탄소화 제품이 필수불가결한 ‘모든 산업의 기반 소재’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결국 선진철강국은 강재의 탈탄소화를 위해서 민간의 단독적인 기술개발로는 한계가 있으며,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미래 그린철강 구현에 필수적인 투자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역시 안보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철강분야의 탈탄소 기술개발에 정부 차원의 선제적 대응책이 필요하다. 그간 철강 분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세계 처음으로 분철광석의 수소유동환원로와 수소환원철 용해용 전기용융로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에 대한 기초설계 기술개발이 완성단계에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동층형, 샤프트형 및 전기분해형으로 수소환원제철 공정이 개발되고 있는데, 분철광석을 기반으로 추진하는 한국형 수소환원제철은 타 개발공정과 경쟁하는 동시에, 철광석의 수급상황과 여건이 다른 지역과 철강사에 차별적 선택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설계 기술개발에 이어 상업화 여부를 검증하는 연산 30만 톤급 실증기술을 구현하고, 동시에 이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그린 철강기술 개발, 응용 지원에도 활용될 수 있으며, 또한 개발 단계에서 Al기술과 연동시켜 미래를 대비하는 디지털 엔지니어링의 적용을 고려할 수 있다.
철강공정의 탈탄소화는 전방산업인 자동차, 조선 및 기계산업의 탄소집약도 지수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 관련 산업의 미래 경쟁력 제고에도 필연적 요소이다. 따라서 철강 제품의 고도화와 함께 탈탄소화는 대한민국 산업생태계에 큰 영향력을 갖는 주제로서 적극적인 투자와 경제, 사회적 관심이 요청된다. 보통의 경우 R&D는 성공확률이 낮은 분야이지만 한국형 수소환원제철기술은 자력으로 상용화 경험을 보유한 파이넥스(FINEX), 대용량 페로니켈(Fe-Ni) 전기 정련 기술을 기반으로 추진되기에 조속한 실증검증이 기대된다.
대한민국 철강 산업의 탈탄소화와 이에 연관된 산업에 보다 구체적인 경제-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 이상호 교수 프로필
2024~현재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 연구교수
2023~2024 POSTECH 화학공학과 겸임교수
2019~2023 포스코 기술연구원 연구위원
2023~현재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 수소환원철강연구소 공동소장
2015~2018 포스코 포항제철소 FINEX/POIST R&D 추진반장,전무
2014~2015 포스코 기술연구원 상무
2010~2014 포스코 기술연구원 제선FINEX 연구그룹장, 상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