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입산 철강에 '조또마떼'…韓에도 불똥 튀나
일본이 수입산 철강 제품에 대한 무역 정책 강화를 예고하고 나섰다. 지난해부터 일본 철강연맹은 중국 철강 생산 과잉 문제를 여러 차례 거론해왔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의 최대 철강 수입국인 만큼 한국 제조사들에게도 직·간접적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본이 움직였다
일본 철강업계 전문지인 텍스리포트(Tex Report) 보도 내용에 따르면 일본철강연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수입 철강 제품이 늘어나는 것이 우려된다며 통상 정책을 연초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일본철강연맹 이마이 타다시 회장은 "수입 강재 증가가 일본의 내수 공급망뿐 아니라, 철강업의 탈탄소화를 향한 투자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현재 수입 강재 대책을 경제산업성 등 정부 기관과 의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마이 회장은 "반덤핑(AD), 긴급수입제한(SG), 상계관세(CVD) 등 WTO에서 허용한 조치들은 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효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공급망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AD와 SG 말고도 새로운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리롤러사는 우리나라의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에 따른 일본의 불편한 감정이 뒤섞여 표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현대제철은 지난 1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중국산과 일본산 열연강판을 대상으로 반덤핑 제소를 신청했다. 리롤러사 관계자는 "일본은 중국산 철강을 견제해 왔지만, 최근 우리나라와 열연강판에 대한 무역 이슈가 생기면서 우리도 표적이 될 수 있다"며 "일본의 철강 수입국은 한국, 중국, 대만 정도로 좁혀질 수 있고 지난 과거에서도 반덤핑 조사 대상국으로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사례를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조사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우리나라 3대 철강 제품 수출 대상국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최대 수입국이다. 현재 일본과 한국은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ECP)에 따라 거의 모든 철강 제품이 무관세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산 제품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등 수입산 규제에 나서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산 철강 제품에 좀처럼 특별한 무역보호조치를 실시해오지 않은 만큼, 레퍼런스도 없기 때문에 예측도 불가능하다.
'무역 보복' 첫 타깃은 누구?
일본이 무역보호조치에 나서면 우리나라 철강사 중에는 포스코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스코는 일본에 고급 철강 제품들을 수출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자동차강판과 고장력강 등 고부가가치 제품은 일본 대표 자동차 제조사인 도요타, 닛산, 혼다와 주요 부품 업체들로 공급하고 있다. 이 산업 클러스터에는 포스코의 일본 전략 제품인 P.O고장력강 열연강폭강대, 고장력강 용융아연도금강판, 자동차용 아연도금강판 등이 납품된다.
무역 규모도 크다. 작년 기준 P.O고장력강 열연광폭강대(1,089억 원), 고장력강 용융아연도금강판(2,401억 원), 자동차용 아연도금강판(3,221억 원)을 수출 금액은 총 6,711억 원 수준이다. 이 기간 P.O 고장력 광폭강대의 평균 단가는 톤당 886달러로, 일반 P.O강대(785달러)와 비교해 16.3% 비쌌다. 고장력강 용융아연도금강판(942달러)로 역시 일반재(886달러) 대비 약 6.3% 높았다.
더불어 수출이 늘고 있다는 점도 일본을 자극하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해에만 2015년 통계 집계 이후 이들 품목은 사상 최고치를 달성한 상태다. 특히 고장력강 용융아연도금강판은 2015년 2만톤도 채 되지 않던 물량은 10년 만에 열 배 이상 불어났다.
포스코는 지난 2009년부터 도요타 자동차의 철강 공급권을 따내면서 일본향 자동차강판 수출을 본격화했다. 자국 기업 간 유대관계가 특별한 일본 기업 특성상, 포스코의 납품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을 정도다. 2012년에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주요 부품 공급업체로 구성된 '협풍회(協豊會)'에 가입했고, 도요타로부터 최고 품질상도 종종 받아왔다. 도요타 외에도 닛산에 초고장력강 '트립강(TRIP: transformation-induced plasticity steel)’을 대량 공급했다. 혼다와도 꾸준한 제품 공급을 이어왔고 작년 4월에는 포스코퓨처엠와 일본 혼다가 캐나다에 양극재 합작사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일본향 자동차 강판 물량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해 왔다"며 "세계적인 자동차강판 제조사로 인정받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사실상 현대제철 고로 건설로 현대차그룹향에서 발생한 물량 공백으로 일본에서 생존 전략을 찾았다는 것은 업계 사람이라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고 말했다. 또 "일본이 무역 조치로 자동차향 강판으로 방향성을 정하면 포스코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5.3조 수출 시장 다 날릴판"
철강업계는 일본의 의미심장한 메시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산 철강 제품이 어떤 형식으로라도 타깃이 되면 우리나라 제조사들의 수출 피해가 도미노처럼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7년 한국산 철강 배관 연결 제품에 최대 73.51% 반덤핑 예비 관세를 부과한 전적이 있다. 일본이 보복 관세로 방향을 튼다면 높은 덤핑 마진율로 관세 폭탄을 안길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제조사들은 일본에 열연강판과 냉연강판과 같은 상공정 제품은 물론 도금, 컬러강판, 강관 등 하공정 제품들을 수출해오고 있다. 아연도금강판 수출 규모는 지난해 물량으로나 수출 금액으로나 지난 2015년 통계 이래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컬러강판 역시 최근 10년간 꾸준하게 물량이 늘고 있고, 석도강판과 강관 수출 물량도 전년 동기 대비로 각각 7%, 14% 증가했다.
특히 리롤러사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 일본향 수출 물량의 증가가 하공정 제품에서 나타나고 있다 보니 재압연사들은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해서다.
우리나라는 최근 일본을 상대로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를 추진했다. 반덤핑 혐의를 받게 된 일본산 열연강판의 지난해 수입 총액은 1조 6,000억 원 규모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산에 대한 무역 규제를 실시한다면, 우선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수출한 모든 철강 품목이 전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작년 일본향 전철강 수출 규모는 5조 3,800억 원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복잡한 유통 관행과 실질적인 비관세 장벽 등 요인으로 판매를 더 늘리기 어려운 시장이다"라며 "하공정은 소량이라도 수출하는 등으로 물량 확대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일본의 무역장벽이 지금보다 더 높아지면 중소·중견기업들은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철강업계와 40여 년 지켜온 관계가 어그러질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철강업계는 일본 철강사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포스코 설립과 초기 발전 단계에서 일본 철강사들은 토목 공사부터 설비 설치까지 전면적인 기술 지도를 제공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건설 과정에서도 입지 선정과 매립지 조성 등을 협력했다. 재압연사는 일본 기업들과 다양한 제품 스펙 등 기술적 논의를 함께해왔다. 최근까지도 한일 민간철강협의회를 통해 철스크랩, 그린수소 등 탄소중립 원료 확보, 탄소감축 기술 개발, 저탄소 철강 국제표준 수립 등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함께 얘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한국 철강업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지속적으로 공동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통상 규제로 양국 철강업계 간 거리가 멀어진다면 우리 철강업계에 충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양국의 무역 규제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크게 혼재하고 있어 단정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부정적인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