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후판 반덤핑 예비판정이 주는 의미
불공정 무역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무역위원회가 중국산 후판에 최대 3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예비 판정을 내렸다. 이는 국내 철강업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시장 교란과 가격 붕괴에 대한 대응책으로, 예상보다 높게 관세율이 책정된 것은 정부가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강경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수입 규제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생존과 글로벌 경쟁력 유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특히 이번 반덤핑 관세 부과가 가져올 효과는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 제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후판의 경우, 국내 철강재 생산에서 열연강판, 철근, 아연도금강판과 함께 4대 품목으로 꼽힌다. 그런데 2021년 33만 톤이었던 중국산 후판 수입은 2024년 138만 톤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수입 급증으로 국산 제품의 판매는 매년 뒷걸음질 쳤다. 국내 수요는 오히려 줄었는데 중국산 수입이 늘자 당연히 국내 제조사들의 경영실적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후판 생산업체들은 생산 비용을 맞추기 위해 감산을 고려해야 할 상황까지 내몰렸고, 만약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후판 사업을 끌고 갈 여력도 줄어드는 상황에 놓였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위기를 넘어, 국내 철강 산업 전반의 생산 기반이 붕괴로 이어지는 문제가 되었다.
고율의 관세가 매겨지면서 철강업계는 숨통이 트일 것이다.
반면 후판을 사용하는 조선업계와 건설업계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선박 제조원가의 20%정도가 후판 비용인 조선업계는 시황 회복으로 장기 부진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반덤핑 관세 부과로 후판 구매비용이 상승하게 되면 조선업 전체의 원가 경쟁력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다만 그마저도 보세창고를 운영하는 대형 조선사와 그렇지 않은 중소 조선사의 상황도 크게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 후판 사용 비중이 높은 중소 조선사의 경쟁력 저하가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철강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저가의 중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 견제하는 것이 중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수주 경쟁을 펼치고 있는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 저하 우려로 연결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은 항상 이해가 충돌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보장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껏 개방경제 체제를 유지해 왔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무역을 지향해 왔다.
철강에 있어서도 해외에서 수많은 무역규제를 당해 왔지만 우리가 수입규제 벽을 높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이 이번 조치를 시행하면서 중국이 이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철강 산업뿐만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화학 등 다른 산업에서도 중국과의 무역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산업정책, 그중에서도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정책은 단순한 경제적 결정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무역규제 장벽을 높이면 단기적으로 시장은 혼란을 겪겠지만 결국에는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다만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후행하는 국가 정책과 기업의 전략적 마케팅이 수반되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철강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결과적으로 품질과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 전략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