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2025-04-14     에스앤엠미디어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가 다시 한번 거대한 암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최근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올해 글로벌 경기 침체 확률을 60%로 높게 내다봤고 다른 금융기관들도 발빠르게 부정적인 전망치를 높이고 있다. 이로 인해 이른바 ‘R(Recession)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뉴욕 월스트리트 금융가에서 조심스레 내다봤던 위기가 이제는 실물시장의 위기로 전이되는 상황이다. R의 공포는 현재 주가가 연일 하락하고, 환율이 안정세로 돌아서지 못하자 이는 곧 경기가 침체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에서 나온 것이지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이에 맞서는 세계 각국의 보복 관세가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JP모건은 미국의 통상 정책이 올해 내내 글로벌 경기 최대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특히 무역전쟁이 기업 심리를 급격히 냉각시키며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복잡하게 얽힌 글로벌 공급망에 연쇄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금융 시장은 이미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요 주가지수는 출렁거렸고,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급격히 강화됐다. 달러화는 강세를 보이며 신흥국 통화에 압박을 가하고 있고, 원자재 가격도 불안정하게 움직인다.

현장의 산업계도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는 미국 일부 공장과 멕시코, 캐나다의 생산라인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미국 2위 철강 제조업체 클리블랜드 클리프스는 자동차 생산 둔화로 이번 여름 미시간주 디어번 제철소 가동을 멈추고 대규모 해고를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캐나다 메탈프로세싱그룹도 미국의 관세 위협과 수입 증가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러한 생산 차질과 구조조정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긴장이 심화될 경우, 주요 부품과 원자재 공급망 전반이 타격을 입어 국내 자동차 산업에도 파장이 클 것이다. 25%의 일괄 관세가 적용되는 철강의 경우에도 자동차 강판과 에너지용 강관 등 수출 비중이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나아가 우리 경제가 수출 의존형 구조이기 때문에 최대 피해국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중국이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함에 따라, 중간재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이중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건설경기 불황으로 철강 내수가 정체되면서 버팀목이 되지 못하고 있어 수출과 내수 동시 불황은 자생력이 떨어지는 중소 업체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유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경제는 이미 오랜 시간 누적된 불균형과 갈등 속에서 허약해진 상태다.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이에 따른 보복 관세는 단기적인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세계 경제 전체를 향한 중대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무역 전쟁은 단기적 승부가 아닌, 장기적 패권 다툼의 서막으로 해석된다. 결국 글로벌 공급망이 미·중 양극화로 재편되면서 한국을 비롯한 중견 수출국들은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지독히 불안한 세계 정세 속에서 수출 의존형인 국내 경제의 성패는 선제적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직전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되짚어봐야 한다. 당시 우리 경제는 정부의 재정 투자와 금융 지원, 유동성 공급 등의 정책적 효과와 함께 산업계 전체적으로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졌다. 철강을 비롯해 산업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볼 수도 있다.

최근 국회에서 철강산업 위기 극복을 위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국내 제조업을 든든히 뒷받침하는 철강산업을 경제 안보 차원에서 보호하고 육성하려는 입법 움직임을 적극 환영한다. 중장기적으로 일관성 있는 산업 지원 정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업계 전반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상황이다. 위기 극복의 성공사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