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소비쿠폰으로 철강 못 사요?”
소비쿠폰 15만 원을 받았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다. 쓰지 않으면 국가로 귀속된다고 하니 사용처를 두고 고민이 많다. 사용 가능한 매장도 한정적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소비 지역도 한정되어 있다. 서울이 직장인 필자로서는 수도권이 생활권이기 때문에 주말에나 소비해야 할 것 같다. 혹자는 “줘도 말썽이고 안 줘도 말썽이다”라고 비아냥거린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가 자주 접하지 않은 국가 정책이기에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맞다. 여기저기서 많은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이러한 상황을 왜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국민에게 지원금을 주면서까지 소비를 진작시켜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개탄스럽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민생은 뒷전이고 당리당략을 위한 싸움만 하니 경제가 살아날 리 만무하다. 각종 규제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풀려야 하지만 방치되어 있다시피 하다. 그러니 기업이 경쟁력이 떨어지며 경제가 침체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좋지 않은 글로벌 경제환경도 기름을 부은 격이다. 특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이에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정확히 말하면 ‘민생회복 소비쿠폰’이다. 높은 물가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의 매출 확대를 통해 국내 경기 활성화에 그 목적이 있다. 1인당 기본 15만 원에 거주지역과 한부모가족·차상위계층 해당 여부 등에 따라 45만 원까지 받는다. 선심(善心)성 정책이 될지, 아니면 산소호흡기 역할을 할지는 지금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 모두의 간절한 바람은 후자일 것이다. 생활 현장에서 장사가 너무 안되는 것을 자주 목도(目睹)하기에 더욱 그렇다.
정부의 쿠폰이 풀린 지 일주일 동안 편의점 매출이 10% 넘게 늘었다고 한다. 직영 매장에서 소비쿠폰 사용이 막힌 백화점·대형마트와 달리 편의점은 가맹점이 대부분이어서 장 보는 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특히 맥주 매출이 30% 안팎 늘어나는 등 오래 두고 소비할 수 있는 술과 담배 매출이 늘었다고 한다. 건강기능식품과 식사 대용식 매출도 가세하고 있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애초 바라던 소비쿠폰의 순기능일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되듯이 앞으로 엄청난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훈훈한 미담까지 들린다. 소비쿠폰으로 더위에 고생하는 소방관들에게 ‘커피 100잔’ 돌린 시민의 이야기는 더위를 잊게 한다. 그 주인공은 유오균(33) 씨다. 유 씨는 퇴근하던 중 무더위에 고생하는 춘천지역 소방관들을 보며 소비쿠폰으로 커피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15만 원으로는 모든 소방관에게 커피를 돌리기 부족했다. 이에 지인을 통해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을 소개받았다. 그 사장도 유 씨의 선행에 동참하며 15만 원으로 100잔의 커피를 돌릴 수 있었다. 소비쿠폰이 부린 마법 같은 이야기가 흐뭇하다.
반면 취지에 역행하는 얌체족도 있다. 소비쿠폰으로 결제한 소비자가 ‘현금 환불’을 요구하는 사례가 속속 발생하고 있다. 소비쿠폰 환불은 쿠폰 복원이 원칙이지만, 음식·서비스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계좌 환불’을 원하는 일부 고객들로 소상공인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현금 환불이 소비쿠폰 현금화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이미 경찰청이 단속에 돌입했다. 하지만 악성 리뷰 등을 걱정해야 하는 자영업자가 현금 환불 요구를 마냥 거절하기 어렵다는 것이 함정이 되고 있다.
이 소비쿠폰을 두고 ‘경기 부양을 위해 꼭 필요한 긴급 수혈’이라는 입장의 찬성론자와 ‘포퓰리즘 정치’라는 반대론자의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두 의견이 다 틀린 것은 아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미래에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죄책감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그래서 소비쿠폰을 받는 심정은 기분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지 않을 수 없다. 놓아두면 큰불로 번질 수 있어서 절박하기 그지없다.
철강·비철금속 업계도 형편이 좋은 것이 아니다. 산소호흡기와 같은 지원책이 필요하다. 소비쿠폰이 철강재 사는데도 허용되었으면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한다. 오죽하면 이런 생각을 할까 하는 자조적 반성이 허무하다 못해 간절하다. 미국의 관세 전쟁에 우리 업계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민생도 중요하지만 침체 늪에 빠진 기업의 회생도 시급하다. 소비쿠폰과 같은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아우성이 아니라 통곡(慟哭)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특히 명심해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