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포항(浦項)을 살려주세요

2025-09-08     황병성

포항(浦項) 시는 국내 제1의 철강 도시다. 최근 이곳이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 포항은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태동한 곳이고,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자리한 철강 성지이다. 과거 50여 년 전에는 통통배가 고기잡이를 떠나고, 갈매기 소리가 정겹던 어촌이었다. 목가적(牧歌的)인 풍경이 아름답던 도시는 포스코가 들어서며 천지개벽을 한다. 상업과 수산업이 공존하던 도시는 공업화 바람을 타고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인구 유입이 늘어나고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활기찬 도시로 변모했다. 우리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도시로도 유명해졌다.

1967년부터 시의 남부인 송내동·장흥동·동촌동 일대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며 기지개를 켰다. 1970년 포항종합제철(현재 포스코) 건설을 시작으로 이와 연관된 철강 가공업체가 속속 들어섰다. 이것이  제조업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백호의 노래 ‘영일만 친구’로 유명한 영일만을 끼고 있는 도시가 세계적인 철강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포스코 역할이 컸다.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도 철강 르네상스를 이끄는데 한몫했다. 이처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았던 포스코와 철강단지는 시민들의 희망이었고 자랑이었다.

그렇게 거침없이 잘 나가던 포항이 지금 시름시름 아프다. 철강 도시 위상도 위태롭다. 설비가 셧다운 되고 가동이 축소되고 있다. 도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도  불안하다. 문제는 복합적으로 찾아왔다. 수출해서 먹고사는 철강업계는 중국의 저가 싸구려 철강재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 내수도 심각하다. 중국산에 시장을 침범당한 채 속수무책이다. 수요 연관산업 부진도 기름을 부었다. 특히 실망스러운 것은 이 산업들이 외국산 소재를 늘리고 있는 점이다. 반덤핑 자물쇠로 잠갔지만 안심하기에 이르다.

최근 미국의 고율 관세가 아픈 곳을 또 때렸다. 수출이 중요한 우리 업계에는 이 아픔이 치명적이다. 이에 철강 도시의 영화도 과거가 되어버렸다. 현실은 황량한 사막처럼 공허(空虛)한 바람만 분다. 보다 못한 포항시와 업체들이 살길 찾기에 나섰다. 이들 행보는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단호했다.  처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행동에서 느껴졌다. 여러 활동 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이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 노력이다. 정부를 상대로 치열한 활동을 벌였다. 진정 살고자 하는 피나는 노력은 처절할 정도였다.

이것은 절망에 빠진 업체들에 산소호흡기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믿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혜택이 간절함을 더했다. 지정되면 철강업계를 대상으로 긴급경영안정자금과 지방투자촉진보조금을 우대하고,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만기연장·상환유예, 신용보증 확대를 지원 혜택이 주어진다. 2차 추경을 통해 대출 이자 부담 경감을 위한 이차보전(3%p)과 기업 맞춤형 지원, 인력양성 프로그램도 가동한다. 목숨을 걸어도 아깝지 않은 혜택임이 틀림없다. 포항시와 철강업체가 밤낮으로 동분서주한 이유가 있었다.

이 행동에 산업부가 맞장구를 쳐준 것은 다행이다. 포항시를 철강 공급과잉에 따른 피해 우려 지역으로 판단하고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지정 기간은 2025년 8월 28일부터 2027년 8월 27일까지 2년이다. 사실 철강산업 위기는 포항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기반 산업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 위기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손 놓고 있으면 결과는 명확하다. 포항시와 철강업체들의 노력에 박수가 아깝지 않은 것은 지역 문제를 떠나 국가적 문제로 인식한 점이다. 여기에 간절함과 책임감이 더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았다. 이 결과가 불 꺼진 설비를 되살리고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공장이 늘어나는 대책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울러 포항이 다시 활기찬 도시로 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2년 후에는 위태로운 환자의 생명을 잇는 산소호흡기가 아닌 철강 도시의 명예를 회복하는 ‘신의 한 수’로 평가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포항시가 지역 철강업체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자 포스코도 상생의 손을 내밀었다. 포스코는 요즘 무척 어렵다. 그럼에도 큰마음 먹고 포항시에 큰 선물을 안겼다. 직원 기숙사를 남구 해도동에 신축하기로 한 것이다. 기숙사가 들어서면 죽어가는 지역 상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도심 공동화 해결은 물론이고 도시 재생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기에 ‘K스틸법’만 통과되면 포항시는 예전 활기찬 철강 도시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포항의 송도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포스코 야경은 끝내준다. 그 야경을 보며 최백호의 노래 영일만 친구를 부를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