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의 흥미로운 투표 결과

2025-10-27     에스앤엠미디어

국제연합(UN)의 산하기구인 국제해사기구(IMO)는 1948년에 설립된 후 현재 179개국이 가입되어 해상 안전과 해양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제기구이다.
IMO는 지난 2023년 7월 회의에서 2050년 해운부문의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Net-zero)’ 목표를 결의했다. 탈탄소화 움직임에 글로벌 해운업계도 동참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열린 회의에서는 흥미로운 투표 결과가 나와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10월 18일 런던에서 열린 IMO 회의에서는 ‘2050 Net-zero’ 달성방안을 두고 표결이 진행됐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제안한 ‘Net-zero 이행 1년 연기안’이 최종 57대 49로 가결됐다. IMO의 ‘2050 Net-zero’ 정책 시행 1년이 늦어지게 된 셈이다.

알려진 바로는 EU와 한국, 일본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제안국인 사우디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의 자원국과 미국 영향권에 있는 일부 개발도상국이 찬성하며 규제 연장으로 뜻이 모여졌다.

이러한 결과에도 트럼프의 영향이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탈탄소 규제가 검증되지 않은 연료(LNG) 사용을 강요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고 비판하며 지난 4월에 IMO의 넷제로 협상에서 탈퇴를 선언하고 탄소 규제 반대 진영에 가세했다.

현재 IMO는 선박 설계시점의 효율 기준(EEXI)과 실제 운항 중 탄소배출량 기반의 등급제(CII)를 적용하여 매년 약2%의 탄소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 연료별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배출에 따른 탄소세 부과를 추진하려 했지만 미국의 반대에 어중간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IMO는 2027년부터 5천 톤 이상 국제항해 선박에 톤 당 100달러의 탄소세를 부과키로 하면서도 트럼프 요구를 일부 수용해 미국 내 운항 선박에는 부과를 제외했다.
이번 IMO의 1년 유예 결정은 신규 투자(친환경선 전환)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장기적인 탈탄소 트렌드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실을 고려하여 일시적으로 늦춰진 상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국내에서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2035)’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NDC 토론회를 통해 좁혀진 감축목표(2018년 대비 온실가스배출량) 시나리오는 48%, 53%, 61%, 65% 감축 등 4개 안이다. 환경 기관 및 단체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산업계는 산업부문 배출 전망치가 비현실적으로 높게 설정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산업계 현실을 고려한 목표치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나마 4개 안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차선책으로 꼽고 있다.

특히 철강산업의 경우, 탈탄소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상용화 일정이 반영되지 않은 채 감축목표가 높게 설정돼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2037년에서야 상용화를 기대하고 있는데, 이보다 앞선 2035년까지 고강도 감축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배출량 BAU 산정에 있어서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정부에서도 환경부와 산업통상부 간 이견이 커서 NDC 최종토론회도 무기한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이 매우 빡빡하더라도 산업계가 탈탄소라는 거대 담론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종 목표를 이뤄가기 위한 중간 과정은 항상 현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실현 가능한 목표를 단계별로 세워가며 탈탄소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 입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