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열연강판 막히자 ‘열연 대체 냉연’ 쏟아낸 中…“반덤핑 무력화, 정부 대응 시급”

풀하드 등 냉연강판 수입 급등세…열연강판 반덤핑 취지 흔드는 회피 논란 확산

2025-11-10     이형원 기자

수입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AD) 조치가 시행되자, 중국 철강업계가 판재류 수출 경로를 전환하며 새로운 회피 전략을 꺼내 들었다. 열연강판이 막히자 풀하드(Full Hard, 미소둔강판)와 냉연강판(CR) 등으로 수출 품목을 바꿔 ‘품목 전환형 우회 수출’을 본격화한 것이다. 통상 방어막이 작동하자 품목 체계 자체를 돌려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 제품은 모두 열연강판을 기반으로 한 2차 가공재로, 공정을 한두 단계만 추가해도 HS코드가 달라져 관세 적용을 피할 수 있는 구조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중국산 냉연과 풀하드는 국내에서 열연강판을 압연해 생산하는 것보다 원가가 낮아, 국내 업계가 중간재로 들여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냉연강판과 풀하드 수입이 급증하는 가운데 철강업계는 이를 “AD의 본래 목적을 흔드는 회피 수출”로 규정하고 통상당국의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 열연 막히자 냉연으로 전환…‘품목 갈아타기 수출’ 본격화


철강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열연강판 반덤핑 잠정관세 시행 이후 중국 철강사들은 열연강판 수출을 줄이고 냉연강판·풀하드 수출 비중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 국내 냉연 제조사들도 이에 맞춰 중간재를 확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을 “열연강판을 냉연강판으로 바꿔 수출하는 회피형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철강협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중국산 냉연강판(풀하드 포함) 수입량은 22만5천톤으로, 전년 동기 16만3천톤 대비 37.8% 증가했다. 특히 2025년 8~10월 월평균 수입량은 약 7만5천톤으로, 2024년 평균 수입량 약 5만 톤대를 40% 이상 웃돌았다.

업계 관계자는 “반덤핑 조치로 열연 수입이 막힌 이후, 중국산 냉연·풀하드 수입이 사실상 ‘대체 수출’ 역할을 하는 구조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 중국은 회피, 국내는 대응…열연 공백 메운 냉연 구조 형성


최근 냉연 제조사들은 열연강판 수입이 반덤핑 조치로 제한되자, 중간재인 풀하드 도입을 병행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가격과 공정, 설비 세 요인이 맞물리며 원가와 생산 리스크를 동시에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가격 측면에서 보면, 열연강판과 풀하드 간 수입가격 격차는 톤당 30달러 수준이다. 반면 국내에서 열연을 들여와 직접 냉간압연으로 전환할 경우, 압연 및 보조공정 원가는 톤당 7만~8만 원에 달한다. 결국 해외에서 생산된 풀하드를 직접 들여오는 편이 국내에서 열연을 들여와 압연하는 방식보다 원가 부담이 적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 측면에서도 일정한 대체성이 작용하고 있다. 풀하드는 산세와 냉간압연까지 마친 ‘미소둔(未燒鈍)’ 상태로, 국내에서는 소둔이나 도금 공정만 거치면 최종제품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이에 열연 반덤핑 이후, 중국산 풀하드·냉연이 국내 생산 공정을 일부 대체하며 시장을 잠식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설비·리드타임 측면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열연강판 수입이 제약된 상황에서, 중국산 중간재가 국내 압연 공백을 메우는 형태로 유입되면서 결과적으로 반덤핑 효과를 희석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통상 전문가는 “열연강판을 산세·압연만 거쳐 풀하드로 전환하면 HS코드가 달라져 관세 적용을 피할 수 있다”라며 “이는 중국산 슬래브를 제3국에서 후판으로 제조해 수출하는 행위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 법적 제재는 사실상 한계?…정부, ‘회피수출 조사’로 우회 차단 모색할까 


현재 철강업계는 정부가 중국산 철강의 ‘품목 전환형 우회 수출’에 대해 직접적인 법적 제재를 가하기는 어려울 것으 전망하고 있다. 냉연강판과 풀하드가 열연강판과 다른 HS코드로 분류돼 현행 관세법이나 WTO 반덤핑 협정 위반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반덤핑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회피 행위로 판단될 경우, 정책적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산업통상부는 중국산 및 일본산 열연강판 반덤핑 본조사 과정에서 반덤핑 적용 범위를 기존 HS코드 외 실질적으로 동일 기능을 수행하는 품목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유사 사례에서 ‘품목 회피 조사(Anti-circumvention)’를 거쳐 관세 부과 대상을 넓힌 선례도 있다.

또한 정부는 회피 성격이 명확히 드러날 경우, WTO 협정상 절차에 따라 ‘우회수출조사(anti-circumvention investigation)’ 착수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의 업계의 설명이다. 회피 목적이 입증되면 동일한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할 수 있어 실효적 대응책으로 꼽힌다.

관세청과 통상당국은 원산지 조작, 품목 변경 등 탈법 행위에 대해서는 공동 조사를 통해 법적 조치를 병행하고, 산업부·관세청·철강업계 간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번 조치는 법적 위반이라기보다 제도적 회피에 가깝다”며 “국내 중간재 공급 안정성과 WTO 규범을 동시에 고려한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입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