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때로는 친구처럼, 가족처럼
친구와 친구 간의 나누는 정을 우정(友情)이라고 한다. 이 정에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아픔은 위로하고 좋은 일은 함께 나누는 정이다.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런 친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받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리고 직접 당하기도 한다. 오래된 친구였다면 상처는 더욱 깊을 것이다. 진짜 친구는 힘들 때 기꺼이 손을 잡아주고 서로의 발전을 응원해 준다.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마음 깊이가 판단 기준이다.
군대도 우정과 같은 의미의 전우애(戰友愛)가 있다. 목숨이 위급한 전쟁 상황이라면 전우애는 피처럼 끈끈하다.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겪은 군인들에게서 듣는 전우애는 숭고하다. 전우를 위해 목숨과 바꾼 얘기를 들을 때면 존경스러움이 마음속에 차고 넘친다. 그래서 피를 나눈 전우라고 한다. 전쟁이 아니어도 함께 고생했던 군 생활에서도 돈독했던 전우가 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경험했다. 때로는 형제 같았고, 친구 같았던 전우는 힘든 군 생활을 견디는 든든한 힘이 되었고, 위안이 되었다.
제대 후에도 군 생활을 잊지 못해 결성한 전우회가 있다. ‘해병 전우회’가 그 주인공이다. 해병을 상징하는 단어는 많다. 특히 ‘귀신 잡는 해병’이 대표적인 명성이다. 1988년 정식으로 출범한 이 전우회는 사회를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느 지역에서든 전우회 사무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전국적인 조직이 되었다. 기수별 체계도 엄격하다. 후배 기수는 선배를 깍듯이 존경하고, 선배 기수는 후배들을 살뜰히 챙긴다.
직장도 동료애(同僚愛)가 있다. 치열한 경쟁을 펼치지만, 직장도 사람 중심의 조직이다. 직장은 세월이 흘러 수평적인 조직으로 바뀌었다.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로 변했다. 하지만 우리 선배들은 달랐다. 수직적인 문화가 대세였지만 그때도 동료애는 있었다. 그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하던 가족 같은 동료애는 지금 직장 문화와 다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던 시절, 숙명으로 뭉친 것이 직장 동료였다. 목표를 향해 서로 똘똘 뭉쳐야 했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한 후 서로 격려하며 다진 동료애는 더욱 돈독했다.
고생을 함께 하며 회사를 발전시킨 동료는 퇴직 후에도 잊지 못한다. 우리 업계 출신도 해병 전우회 못지않은 동우회(同友會)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포스코 동우회’이다. 1990년에 창립하여 35년을 맞으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신념과 행동으로 세계제일의 철강회사 건설과 제철보국의 사명을 다한 주인공들이다. 현직에서 활동했던 열정과 자부심이 가족으로 다시 뭉쳤다. 이들은 의미 있고 보람된 나눔의 시간을 갖고자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모습이 경의(敬意)롭다.
또 다른 철강업계 출신 유명 동우회 ‘유니온스틸 동우회’가 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이 동우회는 부침이 심한 모회사 탓에 이름도 바뀌었다. ‘연철동우회’가 첫 번째 이름이다. 뿌리가 연합철강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동국제강으로 넘어가면서 유니온스틸이 되었고 동우회도 이름도 바뀌었다. 1962년 창업한 회사는 1986년 국제그룹 해체 사건 때 동국제강에 인수됐다. 당시 연간 순이익 50∼60억 원을 내던 회사는 자산 규모나 매출이 인수자인 동국제강보다도 컸기에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지금은 연합철강도 없고 유니온스틸도 없다. 동국제강이 흡수 합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우회만은 살아서 숨 쉬고 있다. 퇴직 후에도 동우회를 통해 동료들의 애경사를 챙기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후배들이 본받을만한 애틋한 동료애이다. 동우회는 지난달 19일 ‘제29차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고락을 함께했던 동료들이 모여 선후배의 안부를 묻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배정운 명예회장은 “수십 년 전 함께했던 동료들과 이어온 이 만남이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는 모임으로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부부도 돌아서면 타인이 되는 세상이다. 하물며 남남이 만나 정을 주고받는 것은 어렵다. 그런 정을 29년 동안 나누었다는 것은 박수가 아깝지 않다. 명예회장의 말처럼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동우회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직장인들도 언젠가는 회사를 그만둔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기억하고 싶거나 기억하기 싫은 이런저런 동료가 있다. 그러나 회사 발전을 위해 직장을 다녔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 목적을 향해 함께 뛰었던 동료들이 퇴직 후 동우회를 결성하는 것은 동료애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우리 선배들이 보여주고 있다. ‘유니온스틸 동우회’가 좋은 본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