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값 고공행진, ‘안보의 핵’으로 부상
‘닥터 코퍼(Dr. Copper)’가 다시 한 번 포효하고 있다. 지난 8일 런던금 속거래소(LME)에서 구리 선물가격 은 장중 톤 당 1만 1,771달러를 기록 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들어서만 34%가 넘는 급등세다. 실물 경제의 선행 지표로 불리는 구리 가격의 경신은 단순한 원자재 인플레이션을 넘어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자원 안보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강력한 신호다.
이번 구리 가격 폭등의 직접적인 트 리거(Trigger)는 세계 최대 소비국 인 중국의 경기 부양 의지였다. 지난 8일 시진핑 주석이 주재한 중 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는 내년 경제기조로 ‘고품질 발전’과 ‘온중구 진’(溫中求進·안정 속에서 나아감) 을 견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적극적인 재정·통화 정책 예고로 해석되며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전세계 구리 소비량의 절반을 차지 하는 중국 경기 부양은 인공지능(AI) 를 비롯해 전선과 배관,이차전지 음극 재 등 다방면에 쓰이는 구리 수요의 증 가로 이어진다. 대규모 건설투자뿐 아 니라 전력망 업그레이드와 AI 인프라 확충 투자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양의 구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상승세를 단순히 중국 발(發) 단기 호재로만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현재 구리 시장은 ‘수요의 폭 발’과 ‘공급의 절벽’이 맞부딪치는 거 대한 구조적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우선 수요 측면에서 구리는 4차 산 업혁명의 ‘혈관’이 되고 있다. 데이터 센터, 인공지능(AI), 전기차(EV)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는 구리 없이 는 작동할 수 없다. 전력망 확충과 친 환경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구리의 쓰임새는 기하급수적 으로 늘어나고 있다.
반면, 공급 상황은 암울하다. 전 세 계적인 광산 가동 중단 사태와 신규 광산 투자의 부진은 만성적인 공급 부 족을 야기하고 있다. 구리 수요 증가 에도 불구하고 광산 노후화와 신규 광 맥 발견의 어려움으로 수급여건은 갈 수록 악화되고 있다. 현재 계획된 생 산 능력만으로는 2035년까지 예상 수요의 약 70%만을 충족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CITIC 증권은 내년 글로벌 전기동 공급 부족량이 45만 톤에 달 할 것이라 경고하며, 신규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톤 당 1만 2,000달러 이상 유지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즉, ‘고유가 시대’가 갔듯 ‘저가 구리 시대’도 종말을 고한 셈 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구리의 ‘무기화’ 가능성이다.
미국은 대규모 관 세 부과 가능성을 앞두고 구리 비축량 을 늘리고 있다. 이는 구리가 단순한 산업재를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 자원임을 반증한다. 주요국들이 자국 산업 보호와 공급망 안정을 위해 자원을 비축하고 장벽을 세우는 ‘자 원 민족주의’ 흐름 속에서 구리의 전 략적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구리 가격 상승은 일시 적 현상이 아닌, 미래 산업의 주도권 을 쥐기 위한 전 세계적 쟁탈전의 서 막이다. AI 시대를 선도하고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는 국가와 기업에게 안 정적인 구리 공급망 확보는 이제 선택 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사상 최고 가격을 경신한 구리 가격 표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변화하는 자 원 안보 지형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구리는 더는 단순한 금속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 경제의 패권을 가늠할 가장 중요한 척도이자, 반 드시 사수해야 할 ‘안보의 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