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자원 유출을 막아라!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 제정안이 11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글로벌 공급과잉과 탄소 감축 요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철강산업을 저탄소·고부가 구조로 전환하고 미래 경쟁력을 갖춰 나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 법 내용 중 눈에 띄는 것은 저탄소철강 기준·인증체계 마련, 저탄소철강 기술개발·실증·협력모델 지원, 저탄소철강특구 지정·지원, 재생철자원 가공전문기업 육성 등이다. 이처럼 탄소 중립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제시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탄소 다 배출 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철강산업이 과연 이 법을 통해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저탄소·고부가’로의 전환은 국내 철강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최후 선택이다. 하지만 그 길을 가기가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우리 업계가 잘 알고 있다. 특히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다행히 정부가 법 제정을 통해 철강산업 탄소 중립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것은 걱정의 반 이상을 덜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법 취지를 잘 알기에 그 기여도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철강산업의 탄소 중립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 중요성에도 이점을 간과하지 않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 철스크랩(고철) 자원 관리가 특히 그렇다. 철스크랩은 저탄소 철강 생산에 필수 원자재로 주목받으며 수요가 증가세이다. 산업폐기물로 취급받던 천덕꾸러기 신세에서 신분 상승이 놀랍다. 이산화탄소 배출의 획기적 저감이 일등공신이다. 철강 탄소 중립을 위한 원자재 중 으뜸으로 자리한다. 덩달아 몸값도 뛰고 있다. 이에 타국 유출을 방지해 탄소 중립 주요 소재로 귀하게 모셔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글로벌 경쟁국들은 이미 행동에 들어갔다. 주요 국가들은 철스크랩에 수출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출제한 조치 방식으로 자원 무기화하고 있다. 철강업체들도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관련 회사를 인수·합병하고 있다. 중국은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수출 물량에 40% 관세를 부과 중이다. 애초 중국은 철강 생산이 늘면서 철스크랩 수출국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노후 고로를 폐쇄하고 전기로 중심으로 설비를 교체하며 2021년부터 거꾸로 수입국이 됐다. 러시아도 수출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EU는 수출제한 규정을 도입했다.
국내에서도 철스크랩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철강사들의 발 빠른 움직임이 이것을 더하고 있다. 포스코는 6,000억 원을 투자해 광양제철소에 연산 250만 톤 규모 전기로를 신설하고 있다. 2026년 가동이 목표다. 현대제철도 자동차 강판 같은 고품질 제품을 저탄소 전기로로 생산하는 하이큐브 생산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동국제강도 탄소배출 저감형 하이퍼 전기로 공정 연구에 착수했다. 이에 향후 철스크랩 확보가 사업 성공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탄소 중립 실현도 안정적 확보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철스크랩은 국내에서 수출제한을 받는 자원이 아니다. 폐기물관리법 적용을 받는 폐기물로 분류돼 수급·활용은 물론 산업 생태계 조성에 어려움이 많다. 이에 수출제한을 할 수 없어 해외 유출이 심각하다. 올해 11월까지 수출이 39만 6,000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8% 증가했다. 2022년 28만 톤을 저점으로 3년 연속 증가세다. 특히 2017년(62만 톤) 이후 8년 만에 최대치다. 이 상황을 보며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략물자 지정 등 수출제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해외 유출을 놓고 수요가와 공급자의 의견이 팽팽하다. 수요가들은 앞에서 언급한 특별법에 내용을 추가해 철스크랩의 안정적 공급과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필요하면 일정 기간 또는 물량에 대한 수출제한 등의 규제 마련을 주장한다. 반면 공급자들은 수요가 줄어들면 공급사 재고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수요가가 책임져 주지 못하면 어려운 시황에는 수출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각 입장에서는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전기로 방식 철강 생산이 늘어나면 수요도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한번 수출한 물량은 국내로 다시 돌아올 공산이 크지 않다. 각국 수출제한이 일반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철스크랩이 폐기물이 아니라 ‘순환자원’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아울러 공급 업체들에 대한 세제 혜택 및 각종 규제도 풀어주어야 한다. 다음이 수출제한 정책 등으로 자원을 지키는 것이 순서이다. 공급자가 불만이 없는 지원책이 함께 이어진다면 불만은 해소될 것으로 믿는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귀한 자원을 해외로 유출하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