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환원제철 표준 선점이 미래 경쟁력, 엔지니어링·확산 전략 병행해야”
권오준 前 포스코 회장 “개별 기업은 전력·수소 문제 해결 못해, 정책 뒷받침있어야” “고부가 시장 창출 위한 솔루션 마케팅, 부문간 협력 필요”
본지는 탈탄소화 등 한국철강업계가 마주한 여러 현안을 놓고 권오준 포스코 전 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철강 산업이 고로·전로 중심 공정 정립 이후 최대 변곡점에 들어섰다는 진단을 내며, 탈탄소 전환이 불가피한 만큼 값싼 전력과 안정적 수소 공급, 공정 엔지니어링과 표준 선점이 향후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고부가가치강 시장 창출을 위해선 철강사가 단순 소재 공급을 넘어 고객의 적용 과정까지 함께 책임지는 ‘솔루션 마케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부서·부문 간 협업이 필수라는 시각도 제시했다.
권 회장은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대학원에서 금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코 자동차강재연구센터장, 기술연구소 소장,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 기술총괄 사장 등 주요 직을 두루 거친 뒤, 2014년 3월부터 약 4년간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했다.
권 회장의 리더십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추구하는 ‘기술 관료’로 평가된다. 그는 회장 취임사에서 “포스코의 본질은 철강기술이며, 다시 기술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재편하는 등 사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냈다. 스마트 팩토리 기반을 마련하며 기술 중심의 경영 시스템을 정비한 것도 이 시기의 성과다. 경영 슬로건으로 "POSCO the Great"를 내걸었다.
Q. 지난해 영문 도서 ‘Steel Odyssey’를 발간했다. 출간 계기는 무엇인가?
A. 철강을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철강이 인간 생활에 왜 필수 소재인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기본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책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고, 책에서 다룬 내용을 일반인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소개하는 것도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Q. 철강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 같다. 철강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A. 집안에서 각 형제가 상대, 의대 등 이렇게 한 부분을 담당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학 쪽으로 갔다. 고등학교 때 포항제철이 만들어진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철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엔 기계과를 생각했지만,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소재가 좋아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소재를 만드는 쪽에 내 힘을 쓰는 게 맞다고 봤고, 그 과정에서 고장력강 같은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이후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고장력강 개발 업무를 하면서 커리어가 더 구체화됐다. 유학 중에는 열기계제어공정(TMCP) 관련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인연으로 포스코 쪽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포스코로 오게 됐다.
Q. 한국철강업계가 놓인 현실을 진단하면?
A. 철강 산업은 고로와 전로 중심 공정이 정립된 이후, 가장 큰 변화의 국면에 들어와 있다. 핵심은 이산화탄소다. 철강 산업은 더 이상 탄소를 배출하는 방식으로는 존속하기 어렵다. 탈탄소라는 변화 방향은 명확하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경제성이 맞지 않으면 산업에 정착될 수 없다. 현재 철강 산업은 기술과 경제성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Q. 탈탄소 전환의 현실 조건, 특히 전력·수소 문제는 어떻게 보나?
A. 수소환원제철이 실용화되기 위한 전제는 값싼 전기와 안정적 수소 공급이다. 이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공정의 기술적 가능성과 별개로 경제성이 성립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는 방향성 측면에서 의미가 있으나, 물량과 비용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즉 필요한 규모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문제, 전력 단가를 충분히 낮추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쉽지 않다. 원자력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대형 원전은 정책적 제약이 커 산업 차원에서 접근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같은 방식이 거론된다. SMR은 연료 통제와 안전 관리를 정부 체계 안에 두면서도, 산업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SMR은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단순한 가능성 차원의 이야기도 아니다. 러시아는 SMR을 가장 앞서 개발해 핵잠수함 등에 실제로 적용해 왔다. 이미 현실 적용이 가능한 수준의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참고해 제휴를 포함한 실용화 경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전력과 수소 문제는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수소환원제철을 추진하려면 공정 개발만으로는 부족하고, 전력·수소 인프라를 포함한 정책과 산업 전략이 함께 가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이 확산되면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설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때 공정 설계와 엔지니어링 기술을 누가 쥐느냐가 산업의 주도권을 좌우한다. 더불어 표준 선점을 위해 기술과 함께 시장 구조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Q. 한국철강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미래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A. 우선 엔지니어링 기술이 핵심이다. 수소환원제철이 확산되면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설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때 공정 설계와 엔지니어링 기술을 누가 쥐느냐가 산업의 주도권을 좌우한다. 과거에는 설비 엔지니어링을 해외 업체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원천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포스코 등 한국의 공정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면, 철강 생산을 넘어 새로운 비즈니스가 된다.
확산 전략도 중요하다. 사실 파이넥스는 기술적으로 보면 성공한 공정이다. 문제는 확산 방식이었다. 개발 단계에서 글로벌 메이저 철강사를 충분히 끌어들이지 못했다. 만약 티센크루프나 다른 대형 업체들이 초기부터 함께 참여했다면, 파이넥스는 빠르게 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표준이 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시장 구조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파이넥스에서 배웠다. 이 교훈은 하이렉스 등 수소환원제철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앞으로는 부서 간, 부문 간 협조가 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된다. 대외 경쟁력을 가지려면 각 부문이 협력해 최대공약수를 뽑아내는 것이 경영의 초점이 돼야 한다.
Q. 포스코 회장 재임 시절 ‘솔루션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조직에 정착시켰다. 당시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는가?
A. 고부가가치강은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쓰게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합금을 넣으면 용접성이나 성형성이 흔들리고, 자동차용 강재는 강도·성형성·용접성을 동시에 맞춰야 한다. 고객은 이 리스크 때문에 새 강종 사용을 꺼린다. 그런데 나는 미국에서 철강사들이 자동차 회사와 현장에서 공정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식을 보며 한가지 확신이 섰다. 철강사는 소재만 공급할 게 아니라 가공·용접·성형에서 생기는 문제까지 함께 풀어줘야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디트로이트 등지에서 철강사들은 10~20명 규모의 작은 연구조직을 두고, 공급 후 실제 사용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자동차 회사와 같이 풀었다. 이런 현장 공동 문제해결 활동을 EVI라고 한다. 그리고 사용자들이 고부가가치강에 가격 부담을 느끼면, 총 비용 관점에서 새 강종을 쓰는 게 더 낫다는 걸 적용 단계에서 보여줘야 한다. 이런 취지의 활동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솔루션 마케팅’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건 회장 재임 이후다. 그리고 EVI를 전사적으로 밀면서 포럼까지 확대해 예산과 실행 스케일을 키웠고, 주요 고객사 VIP를 포스코가 비용을 들여 초청하는 방식으로까지 갔다.
Q. 그런데 대기업일수록 구매·생산·영업 조직이 분절돼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솔루션 마케팅을 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A. 그래서 앞으로는 부서 간, 부문 간 협조가 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된다. 우리 조직은 부서만 달라도 서로 경쟁하는 습관이 강하다. 대외 경쟁력을 가지려면 각 부문이 협력해 최대공약수를 뽑아내는 게 경영의 초점이 돼야 한다.
Q. 철강은 스마트 제조업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의 결합 즉 피지컬 AI가 확산하고 있는데, 철강산업에 어떤 변화를 줄까?
A. 피지컬 AI와 자동화가 철강업에 자리를 잡으면 고용 인원은 줄겠지만 절반 이하로 급감한다는 식의 전망엔 동의하지 않는다. 철강은 연속공정이고 예외 상황이 많다. 설비를 안정적으로 돌리고, 변동 원인을 찾아 공정을 개선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과거 자동화 초기에는 원가 절감 효과가 컸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공정이 상당 부분 최적화돼 있어,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한다고 해서 눈에 띄는 원가 절감 효과가 나타나는 단계는 아니다. 이제는 원가 절감이 아니라 공정 자체를 더 향상시키는 영역으로 들어와 있다.
실제로 고로를 스마트화했지만, 이른바 ‘용선 장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과 감각이 그대로 구현되지는 않는다. 이런 부분은 결국 사람의 경험과 판단이 계속 필요하다.
AI는 이런 공정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공정을 더 빠르게 개선하고, 문제를 더 빨리 찾고, 판단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공정을 발전시키는 주체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Q. 포스코에서 오랜 기간 재직했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는가?
A. 리튬에 대해서는 사실 아쉬운 게 참 많다. 기술 개발은 한 가지를 딱 정해 집중해야 하는데, 포스코는 몇 개 공정을 병행해 내부 경쟁을 시키는 방식으로 간 것 같아 아쉽다. 특히 데모(실증) 단계는 비용이 크게 드는 구간이라 더욱 공정을 한 가지로 정하고 자원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데모 단계에서 2~3개 공정을 경쟁시키면 자원이 분산되고, 결국 결정을 더 어렵게 만든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염호 염수 기반 공정과 국내의 광석 기반 공정은 원료가 다르고 프로세스도 달라 비교가 쉽지 않다. 비용은 A가 낫고 품질은 B가 낫다는 식이 되면, 하나를 고르기가 더 어려워진다. 몇 년이 지나도 성과가 안 나오면 “안 된다”고 보고, 포기하고 제2안으로 가든지, 프로그램 자체를 접든지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Q. 기술과 경영을 모두 섭렵한 업계 선배로서,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나?
A. 포스코에 체계적인 CEO 양성 시스템이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는 기술과 경영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줄어든다. 본부장급 이상에서는 기술·기획·회계를 종합해 의사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CEO 양성 시스템이 제도화돼 있지 않은 기업이 많다. 기준과 시스템이 없으면 CEO 선임 시 외부 환경에 흔들릴 여지가 커진다. 경영자 양성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필요한 지식을 의식적으로 준비시키는 체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