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한전의 ‘흑자 파티’와 철강산업의 ‘비명’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하며 전기를 만드는 원가가 40% 가까이 떨어졌지만 제조기업들이 받아든 전기요금 고지서의 숫자는 거꾸로 치솟고 있다.
한국전력이 역대급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적자의 늪’에서 탈출하는 사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철강과 비철금속 기업들은 치솟은 전기요금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숙제를 안고 전력을 더 많이 써야 하는 철강업계에 지금의 요금체계는 퇴로 없는 막다른 길과 다름 없다.
지난해 한전이 민간 발전사에서 사 온 전력원가는 킬로와트시(㎾h)당 평균 125.45원인 반면에 산업용 전기 판매가격은 181원에 달했다. 원가와 판매가격 차이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15원 남짓이었지만, 이제는 55원을 훌쩍 넘고 마진율은 44%에 달한다. 이로 인해 한전은 지난해 15조 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누적된 한전의 적자를 해소하고 재무 구조를 정상화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이긴 하지만, 그 정상화의 비용을 오로지 산업계, 특히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 전가하는 방식이 과연 정당할까?
이로 인해 철강산업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당장 엄청난 고지서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탈탄소 압력에 맞춰 탄소 배출이 많은 고로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전기로’ 비중을 대폭 늘리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비용 부담도 상당하다.
철강 제조원가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10~15%에 육박한다. 친환경 공정으로 전환하면서 더 많은 전기를 써야 하는데, 정작 그 연료인 전기요금은 지난 3년간 70% 이상 폭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는 올해 1분기 중 야간 시간대 전기요금을 올리는 방식을 예고했다. 24시간 돌아가는 제철소에 밤낮을 가려 조업하라는 것과 다름 없는 이 정책은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에 가깝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의 평균 산업용 전기료는 kWh당 112원이고, 기업들이 밀집한 텍사스주는 우리의 절반도 안되는 77원 수준이다. 원가 하락분을 즉각 반영하는 글로벌 시장과 달리 정치적·재무적 상황에 묶여 요지부동인 우리의 전기요금 구조는 제조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전의 흑자가 반드시 국가 경제의 건강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조업의 수익성을 흡수해 만든 ‘착시형 흑자’에 가깝다. 철강과 같은 국가 기간산업이 높은 전기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면, 한전은 일반용 전기만 팔게 된다.
이제라도 전기요금 체계를 연료비 등 원가와 연동해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손질해야 한다. 원가가 낮아질 때는 기업들도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미래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특히 탄소중립을 위해 전력 사용을 늘려야 하는 위기 업종에 대해서는 별도의 요금 조정이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한전의 재무 정상화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대한민국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방식이어서는 절대로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