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유럽 탄소가격 확정, CBAM은 이제 비용이다

2026-04-13     에스앤엠미디어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지난 4월 7일 첫 탄소가격 공표를 기점으로 선언의 단계를 끝내고, 실제 비용을 계산하는 제도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CBAM은 이미 유럽 철강시장의 거래 기준을 바꾸고 있고, 그 영향은 한국 철강 수출의 구조 자체에도 닿아 있다.

앞서 유럽철강협회(EUROFER)가 CBAM의 대대적 보완을 요구했다. 현행 제도는 범위가 좁고, 배출 추적성이 약하며, 수출 보완책과 탈탄소 지원도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이대로라면 탄소누출을 막는 장치가 아니라 비용을 EU 역외로 밀어내는 장치에 머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가공품까지 적용 대상을 넓히고, 검증 리스크가 큰 국가에는 기본값을 강제하자고 주장했는데, 이는 CBAM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유럽 철강 수입시장은 과거에 가격, 운임, 관세, 리드타임이 오퍼 비교의 핵심이었다면, CBAM이 본격화된 이제는 톤 당 탄소비용이 추가로 고정 항목으로 들어온다. EU 집행위원회가 제시한 2026년 1분기 CBAM 기준가격은 톤 당 75유로다. 비록 2026년에는 보고 배출량 대부분이 무상할당으로 조정돼 단기 충격이 완화돼 있지만, “이제 숫자로 계산하겠다”는 메시지는 분명해졌다.

주목할 점은 그동안 CBAM이 수입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쿼터 소진 속도와 유입 흐름을 보면, CBAM 확정 국면에서도 물량은 계속 EU로 들어왔다. 이는 제도가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시장이 공포가 아니라 이미 계산으로 움직였다는 의미다. 

유럽 철강 수입시장은 이미 ‘탄소를 포함한 실질 도착원가’를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럽 현물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산 철강이 중국, 인도, 동남아 일부 국가보다 낮은 탄소 부담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같은 판재라도 원산지에 따라 향후 유통 마진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인식은 조건부다.

핵심 변수는 배출량 ‘수치’가 아니라 ‘설명력’이다. 최근 유럽 수입업계의 가장 큰 리스크는 CBAM 배출 보고서의 신뢰성 문제라고 한다. 일부 아시아 공급업체의 보고서는 고로–전로 일관공정에서 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수준의 저배출 수치를 제시하며 시장의 의심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착시가 결국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낮은 배출량을 전제로 조달을 결정했다가, 향후 본 신고 단계에서 이를 인정받지 못하면 기본값 기준으로 비용이 다시 계산되기에 한순간에 ‘비용 폭탄’으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한국 철강산업의 대응 방향은 분명해진다. CBAM 환경에서 경쟁력은 더 이상 단가나 물량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추적성, 원산지 관리, 데이터 투명성이 가격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된다. 유럽 바이어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싸게 팔 수 있나”보다 “이 수치를 끝까지 설명할 수 있나”로 바뀌었다.

이 흐름을 감안하면, CBAM을 ‘일시적 유예 구간’이나 ‘행정 부담’ 정도로 인식하는 접근은 위험하다. 제도의 외형이 아니라 방향을 읽어야 한다.
한국 철강산업이 유럽 수출을 유지하고 싶다면, 가격 경쟁력에 앞서 신뢰 경쟁력을 설계해야 한다.

이는 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정책 당국 역시 CBAM을 외교적 현안이나 통상 분쟁의 대상이 아니라, 수출 산업의 거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구조적 변화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한국 철강산업이 유럽 수출 전략을 다시 짜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