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고무줄 가격’ 사라진 벤츠, 철강 유통에 시사점
수입차의 대명사인 벤츠 차량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파는 일이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지난 13일부터 본격 시행한 ‘리테일 오브 더 퓨처(Retail of the Future, RoF)’ 정책이 최근 관심을 끌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뿌리 깊은 ‘딜러 중심’ 유통 구조를 ‘제조사 직접 판매’ 방식으로 전환하는 혁신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RoF의 핵심은 ‘가격 투명성’이다. 그동안 수입차 시장은 “어느 전시장, 어느 딜러를 만나느냐”에 따라 수백만 원씩 가격이 널뛰는 구조였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발품을 팔며 최저가를 찾는 피로감을 견뎌야 했고, 딜러사들은 수익성을 깎아가며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에 내몰렸다. 벤츠가 공개한 ‘통일된 가격표’는 이러한 고질적인 유통 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선언이다.
이 정책의 가장 큰 장점은 브랜드 가치 제고다. 본사가 직접 가격을 통제하면 시장 가격이 방어되고, 소비자는 어디서 사든 같은 혜택을 받는다는 신뢰를 얻게 된다.
딜러사 역시 과도한 할인 경쟁 대신 서비스 질 향상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다. 온라인 스토어를 통한 재고 통합 관리는 본사 차원의 물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반면 우려도 존재한다.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딜러사들이 재고 상황에 따라 즉각적인 추가 할인을 통해 물량을 털어낼 수 있었으나, 이제는 본사의 월 단위 프로모션 결정만을 기다려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위 ‘대박 할인’의 기회가 사라져 구매 매력이 반감될 수도 있다. 영업 현장의 자율성이 억제되면서 판매 사원들의 동기 부여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도 숙제다.
이러한 벤츠의 행보는 장치 산업이자 유통 구조가 복잡한 철강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현재 철강 유통은 제강사-유통사-실수요자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할인 소급과 가공비 후려치기 등이 만연해 있다. 그래서 벤츠의 RoF 모델은 철강 시장에도 세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가격 표준화’다. 철강재는 규격화된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유통 단계에서 가격이 불투명하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벤츠처럼 공식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기준 가격과 할인율을 명확히 공시한다면,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유통 시장의 혼란을 줄이고 공정한 거래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재고 관리의 중앙집권화’도 참고할만 하다. 개별 유통사들이 각자 재고를 쌓아두고 가격 전쟁을 벌이는 대신, 제조사가 통합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 수급 상황을 조율한다면 과잉 공급으로 인한 급격한 가격 하락을 방어할 수 있다. 이는 곧 철강사들의 수익성 방어와 직결된다.
‘가치 중심의 서비스 경쟁’으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가격 깎아주기식 영업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가공 품질, 적기 납기, 맞춤형 물류 서비스 등 비가격적 요소가 경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벤츠가 딜러사의 역할을 ‘판매’에서 ‘고객 경험 관리’로 재정의했듯, 철강 유통사 또한 단순 중개자가 아닌 솔루션 제공자로 거듭나야 한다.
벤츠의 RoF 정책으로 인해 딜러사가 ‘판매 주체’에서 ‘서비스 대행자’로 변모했듯, 철강 유통사 역시 제조사의 직판 확대와 가격 투명성 강화 흐름 속에서 단순 중개인 이상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이제 철강 유통사는 ‘물건을 싸게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제조사의 영업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서비스 전문 기업’이 되어야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