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수박 가격과 철강

2026-08-03     황병성

‘수박 겉핥기’식이라는 속담이 있다. 수박의 맛있는 속을 먹지 않고 겉만 핥고 있다는 뜻이다. 내용은 모르고 겉만 건드리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러한 상황을 수없이 목격하고 행동하기도 한다. 수박은 여름의 대표적인 과일이다. 에어컨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 평상에 앉아 시원한 수박을 나누어 먹던 여름밤의 낭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모깃불의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할머니의 무서운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가슴 졸이며 먹었던 것이 수박이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수박에 얽힌 황당하고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조선 시대 수박은 고급 과일이었다. 고려 말 몽골을 통해 들어온 수박은 재배하기에 어려움이 컸다. 이러한 이유로 왕실이나 양반 귀족들만 먹을 수 있었다. 세종대왕 시절 왕실의 음식을 담당하던 한 내시가 수박의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훔쳐먹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나중에 들통이 나고 세종의 노여움을 사서 곤장을 맞고 유배까지 가는 처벌을 당한다. 왕의 총애를 받던 내시조차 신세를 망치게 만든 것이 수박이었다.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수박 서리와 청렴한 선비’ 이야기는 황당하다. 요즘 눈으로 보면 선비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옛날 어느 시골에 가난한 선비가 있었다. 매일 글만 읽으며 살아가는 정직한 선비였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선비는 글을 읽다가 출출함과 더위를 참지 못하고 밤길을 거니는데 수박밭이 눈에 들었다. 달빛을 받은 수박이 먹음직스럽게 선비를 유혹했다. 선비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크고 잘 익은 수박 하나를 따서 그 자리에서 쪼개어 먹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즙이 입안에 퍼지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수박을 다 먹고 나자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몰려왔다. 남의 수박을 탐내어 몰래 먹었으니 선비로서 양심을 속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날이 밝자 대가를 치르기 위해 밭주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어르신, 참으로 부끄럽게도 제가 어젯밤 더위와 허기를 참지 못하고 어르신 수박 하나를 몰래 따 먹었습니다. 수박값을 치르고자 하니 부디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빌었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은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당시 재미 삼아 서리를 하는 일이 흔했고, 이것을 뼛속 깊이 반성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가난한 글쟁이가 수박 한 통 서리했다고 무슨 큰 죄가 있겠소. 돌아가서 글이나 열심히 읽으시오”라고 하자 선비는 고개를 저으며 품에서 몇 푼의 돈을 꺼내 주인에게 전했다. 훗날 이 정직한 선비는 과거에 급제하여 아주 청렴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훌륭한 고을 수령이 되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여름철 잘 익은 수박을 볼 때마다 정직했던 선비의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에게 남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는 교훈을 전하곤 했다. 세월이 흘러 수박은 서민들도 자주 먹는 사랑하는 과일이 되었다.

하지만 서민들이 급등한 가격에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다. 7월 25일 가락동 시장에서 수박 8㎏ 평균 경락가격은 2만4,913원이었다. 22일 1만4,647원에서 사흘 만에 51.7% 급등했다. 같은 기간 특품 가격도 2만407원에서 3만156원을 47.8% 올랐다. 수요가 단기간에 급증한 영향이 컸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증거다. 우리 업계 입장에서 부럽기 그지없다. 조금이라도 가격을 올려도 경기를 하는 수요가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수박 맛처럼 달콤한 소식도 있다. 디지털센터 건설용 철강 수요 급증은 가뭄 속의 단비다. 최근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수요가 급증하면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실제로 작동하는 대표적인 예시다. 이에 단기간 수급 불균형이 가격 폭등으로 직결되는 특성을 가진다. 비닐하우스 건설 등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도 포함된다. 지금의 수박 가격이 이 원칙을 따른다. 우리 업계는 가격 올리기가 쉽지 않다. 수요가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원가부담을 제조사가 떠안는 경우가 많다. 가격 협상 테이블이 있지만, 갑의 위치에 서지 못하고 항상 을의 위치다. 업계의 생존권과 직결된 가격 문제는 수박 가격 결정이 정답이다. 제조사 원가부담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만 고수하는 수요업계가 심사숙고(深思熟考)해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