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고망간강 KS 제정, ‘쓸 수 있는 표준’ 되기를
최근 선박용 액화천연가스(LNG) 탱크에 쓰이는 고망간강의 국가표준 제정이 예고됐다. 국가기술표준원이 국제표준과 부합하는 한국산업표준(KS) 제정을 추진하면서, 그동안 국내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공들여온 극저온용 고망간강의 활용 기반이 한층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LNG는 영하 163℃의 극저온 상태로 저장되기 때문에 이를 담는 탱크 소재에는 높은 충격 인성과 안정적인 용접성, 장기 신뢰성이 요구되어 9% 니켈강이나 스테인리스강이 주로 사용되어 왔다. 고망간강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면서도 기존 소재에 비해 원가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발빠르게 개발 역량을 축적해왔기 때문에 이번 KS 제정은 소재 국산화와 적용 확대를 뒷받침할 제도적 발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표준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써도 되는가”를 판단하게 하는 신뢰의 언어다. 조선소가 새로운 소재를 채택하고, 선주가 이를 승인하며, 선급과 기자재 업체가 설계와 제작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우수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표준, 국가표준, 선급 인증, 실제 적용 사례가 서로 맞물려야 비로소 시장은 움직인다.
마침 조선 시장의 흐름도 고망간강 적용 확대에 우호적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척수 경쟁보다 LNG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VLCC, LPG·암모니아 운반선 등 고부가 선종 중심으로 수주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선박은 일반 상선보다 고인성·고강도 후판과 극저온용 특수강 사용 비중이 높다는 특징이 있고 고망간강은 바로 이 변화 가운데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소재다.
글로벌 표준 경쟁은 이미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고망간강 관련 국가표준과 선급 인증, 실제 선박 적용 사례를 묶어 이른바 ‘표준 패키지’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LNG 탱크용 소재를 넘어 액체수소·액체암모니아 등 차세대 극저온 저장설비까지 겨냥하고 있다. 또한 조선용 소재 경쟁에 그치지 않고 미래 에너지 인프라 소재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포스코를 비롯한 국내 산업계는 LNG용 고망간강 개발과 국제표준 제정, IMO 코드 반영 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쌓아왔다. 최근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을 중심으로 고망간강 주조품, 단조품, 용접 피팅, 용접 강관, 강판 등 국제표준 5종이 발간된 것도 큰 진전이다. 소재 생산에서 부품 제조까지 이어지는 기준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글로벌 선주와 조선사에 신뢰를 줄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다만 표준 제정만으로 시장이 저절로 열리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표준 이후의 실행이다. 철강사는 품질 안정성과 공급 능력을 증명해야 하고, 조선사는 적용 경험을 빠르게 축적해야 한다. 연구기관과 시험인증기관은 성능 검증과 데이터 축적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표준이 실제 조달과 프로젝트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고망간강은 국내 철강업계가 중국과의 범용재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소재로 승부할 수 있는 대표 품목 중 하나다. 더욱이 조선 강국의 지위가 지속되려면 선박 건조 기술뿐 아니라 핵심 소재의 경쟁력도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고망간강이 “쓸 수 있는 소재”를 넘어 “계속 쓰이는 소재”가 되도록 산업계와 정부, 연구기관이 보폭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표준은 만들어지는 순간보다 쓰이는 순간에 더 큰 힘을 갖는다. 고망간강 KS 제정이 국내 철강 소재의 수요 확산과 국산화, 나아가 미래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시장 선점의 계기가 되어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산업의 언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