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수소환원제철 시대, 원전에 주목하는 이유

2026-09-30     에스앤엠미디어

최근 철강업계가 소형모듈러원전(SMR)과 대형 원전을 수소환원제철(HyREX) 전환의 핵심 에너지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단순한 발전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철강산업의 생존 전략과 직결된 사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철강업계가 추진하는 탄소중립의 최대 난관은 기술보다 에너지 조달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를 활용해 철을 생산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만, 막대한 양의 청정수소와 무탄소전력이 전제돼야 한다.

특히 환원제로 석탄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코크스 공정과 제선 공정에서 발생하는 COG나 BOG와 같은 부생가스가 발생하지 않아 제철소 내의 부생가스 발전이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부족한 전력 에너지를 외부에서 더 많이 조달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탈탄소 시대에서 철강사의 경쟁력은 향후 얼마나 많은 저렴한 무탄소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철강사들도 에너지 확보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스웨덴 SSAB와 스테그라(구 H2그린스틸)은 풍력과 수력 기반의 그린수소를 활용한 철강 생산을 추진하고 있으며, 독일 티센크루프와 잘츠기터도 국가 차원의 수소 공급망 구축을 전제로 수소환원제철 투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유럽과 비교해 재생에너지 입지가 제한적이고 전력 단가도 상대적으로 높은 구조다. 철강업계 입장에서는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포스코가 강조한 SMR-전력구매계약(PPA) 제도는 향후 산업계 에너지 정책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재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기업들이 PPA를 활용해 전력을 직접 구매하고 있지만, 원전 전력은 사실상 직접 구매가 불가능한 구조다. 산업계에서는 향후 SMR이 분산전원으로 보급되더라도 수요기업이 전력을 직접 활용할 수 없다면 경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시점이 다가올수록 전력 정책과 산업 정책의 연계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수소 생산과 전기로 확대, 탄소중립 설비 투자 등이 동시에 진행될 경우 개별 기업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전력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열린 산업발전포럼에서 포스코가 민간 투자 기반의 대형 원전까지 언급한 배경 역시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향후 하이렉스가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면 현재보다 수배 이상 큰 규모의 무탄소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재생에너지와 수소 수입만으로는 안정적인 공급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원전이 유일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원전 건설에는 장기간이 소요되고 사회적 수용성 문제도 남아 있는 만큼 반드시 시민사회와의 정책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나아가 재생에너지와 국내외 그린수소, 암모니아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조합한 복합 포트폴리오 구축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결국 포스코의 이번 제안은 원전 활용 확대 자체보다도 철강산업의 탈탄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무탄소에너지 공급 전략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던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전환이 더 이상 개별 기업의 기술개발 영역이 아니라 에너지 정책과 산업정책, 수소경제 정책이 맞물린 국가적 과제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