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故 최창걸 명예회장 1주기 추모식…“경영철학·기업가정신 계승해 미래 50년 열 것”

서울 종로구 본사서 추모식 개최…흉상·추모비 제막도 진행 최 명예회장 ‘사람·신뢰’ 중시…노사화합·장기 성장 토대 마련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핵심광물 공급망 중추 기업 역할 다짐

2026-10-06     김영은 기자

 

고려아연(회장

고려아연(회장 최윤범)이 고(故) 최창걸 명예회장의 별세 1주기를 맞아 대한민국 비철금속 산업 발전에 헌신한 고인의 발자취를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임직원들은 최창걸 명예회장의 사람과 신뢰, 그리고 사업보국의 경영철학과 기술혁신을 향한 도전정신을 계승해 고려아연의 새로운 미래 50년을 열어갈 것을 다짐했다.

고려아연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본사에서 ‘최창걸 명예회장 1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최윤범 회장을 비롯한 유가족과 이제중 부회장 등 고려아연 및 계열사 임직원, 고인의 지인 등 13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약력 보고, 추모영상 상영, 추모사 낭독, 가족대표 인사,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백순흠 고려아연 경영관리부문 사장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으며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이 임직원을 대표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최윤범 회장은 유가족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박기덕 사장은 추모사에서 “지난 1년 동안 고려아연은 안팎의 여러 변화와 도전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나아갔다”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명예회장님께서 세우신 경영철학과 기업가정신이 오늘의 고려아연을 지탱하는 튼튼한 뿌리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고인을 기렸다.

이어 “명예회장님의 삶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 비철금속 산업을 위대한 도약의 길로 이끈 개척과 창조의 역사였다”며 “자원도, 기술도, 경험도 부족했던 1970년대 대한민국을 자원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고려아연을 창립해 과감한 투자와 기술혁신으로 극동의 조그만 제련회사를 세계 최고의 종합비철금속 제련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명예회장님께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신 경영의 핵심은 '사람'과 '신뢰’였다”며 “오늘날 고려아연이 이룩한 모범적인 노사화합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쟁력의 저력은 명예회장님께서 실천하신 바로 이 인재와 신용 중시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되었고, 오늘 우리가 마주한 엄중한 외부의 위협과 도전 속에서도 고려아연을 굳건히 지켜내는 힘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핵심광물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최 명예회장이 강조한 사업보국의 가치를 이어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과 한미 경제협력에 기여하고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 등 글로벌 공급망의 중추 기업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신재생에너지와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등 친환경 신성장 동력을 통해 미래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고인이 일궈낸 고려아연의 가치와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한 도전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고려아연 임직원들은 “고려아연은 시대의 변화에 한발 앞서 새로운 기술과 사업을 개척하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소재와 에너지를 가장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며 효율적인 방식으로 공급하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기업’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명예회장님이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변함없이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고 최창걸 명예회장은 지난해 10월 6일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고 최기호 고려아연 창업주의 차남으로 1974년 고려아연 창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고려아연 경영 전반을 이끌며 회사의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경영철학에서 핵심적인 가치는 ‘사람’과 ‘신뢰’였다. 그는 구성원의 노력과 조직의 힘을 강조하며 구성원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신용을 경영의 원칙으로 삼아 협력사와의 신뢰를 쌓았다. 이러한 경영철학은 고려아연의 노사화합과 장기적인 성장을 뒷받침하는 토대가 됐다.

 

고려아연(회장

최 명예회장은 1941년 황해도에서 고 최기호 고려아연 초대회장의 6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60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미국에서 MBA 과정과 3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뒤 1973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1973년 정부가 발표한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서 고려아연이 제련업종을 담당하는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1974년 8월 1일 단독 회사인 고려아연이 설립됐다. 최 명예회장은 사업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주도했으며 국내에서는 국민투자기금과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 해외에서는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사업자금을 유치했다.

당시 IFC는 사업자금으로 7,000만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 명예회장은 5,000만 달러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후 턴키 방식 대신 직접 구매와 건설을 진행하는 방식을 택해 최종적으로 4,500만 달러로 공사를 완성했다.

제련소 설립 이후에는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과 부회장을 맡아 기술연구소 설립과 생산시설 확장 등에 힘을 쏟았다. 1983년 영풍정밀(현 KZ정밀), 1984년 서린상사(현 KZ트레이딩) 등 계열사를 설립하며 그룹 기반을 확대했다.

1992년 3월 회장에 취임한 뒤에는 아연공장과 연 제련공장을 지속적으로 증설하고 호주에 아연제련소 SMC를 설립하는 등 글로벌 사업 기반을 확대했다. 또한, 아연 잔재를 환경 친화적인 청정슬래그 형태로 만들어 시멘트 원료로 판매하는 등 아연잔재 재처리 기술을 상용화하며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과 녹색경영을 추진했다.

최 명예회장은 생전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역사회와 소외된 이웃에 대한 나눔도 실천했다. 1981년 명진보육원 후원을 시작으로 아동복지 분야에 관심을 이어갔으며 학교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고려아연 역시 기업시민의 일원으로서 이익의 일정액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원칙 아래 대한적십자사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사회복지단체와 협력하며 사회공헌활동을 확대했다. 최 명예회장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상을 수상했다.

이날 추모식 참석자들은 고인의 흉상 제막식도 진행했다. 유가족과 주요 경영진은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선영으로 이동해 묘소를 참배하고 추모비 제막식을 가졌다. 고려아연은 이날 하루 동안 추모 공간을 마련해 임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고인을 기릴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