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고라니’ 보호 정책 적극 펴야

새정부 ‘고라니’ 보호 정책 적극 펴야

  • 뿌리산업
  • 승인 2017.05.25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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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정수남 기자 snju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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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새벽에 해발 200m가 채 안되는 동네 뒷산을 한바퀴 뛴다. 조깅 중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바로 고라니다.

오늘 새벽 조깅 길에서도 어린 고라니와 조우했다. 다만, 오늘은 산중이 아닌 산에 진입하기 위한 200여미터의 아스팔트 길에서이었다.

처음 놈은 기자의 존재를 모르고 한가롭게 아스팔트를 거닐었다. 차츰 놈과 기자의 사이가 좁혀지고, 20여m를 사이에 두고 놈이 기자의 존재를 알아챘다.

그러자 놈은 앞으로 줄행랑을 쳤다. 오른편에는 낙석과 산사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철조망이, 왼편에는 공공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한 2m가 넘는 콘트리트 담벼락이 있어서다.

놈은 한참을 가다 멈춰 기자의 행동을 살폈고, 다시 거리가 가까워지면 줄달음질 하고…

이러기를 두어번 되풀이하고 나서야 고라니는 양옆이 트인 도로를 만나 유유히 산중으로 사라졌다.

기자에게 이 장면은 과거와 현재의 국내 산업계를 축소한 것처럼 느껴져 씁쓸했다.

여기서 고라니는 뿌리 기업을 포함한 중소기업, 인간인 기자는 대기업, 철조망과 담벼락은 정부의 각종 규제와 진입 장벽이다.

그동안 중소기업은 ‘을’의 입장에서 항상 ‘갑’인 대기업에 당하는 존재였다. 우수한 기술을 대기업에 뺏기거나, 연례행사로 자리잡은 납품 단가 후려치로 중소기업은 시퍼런 멍이 들었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이 흡족할만한 수준도 아니다. 재정적, 기술적 지원이 규모의 중소기업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원을 받기 위한 조건도 까다롭고, 불필요한 조항에 걸려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담벼락과 철조망 때문에 고라니가 산으로 갈 수 없는 것처럼…

중소기업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려운 살림에도 연구개발(R&D)을 강화해 더 우수한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지만, 결국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눈치를 봐야 한다.

고라니가 달아나면서도 기자의 행동거지를 살핀 것처럼...

납품단가 강제 인하는 그나마 양반이다. 기술을 빼앗아 대기업의 자체 공정으로 도입하는 경우, 중소기업은 일감 자체를 잃게된다.

바로 내재화다.

실제 전자를 중심으로 한 국내 모 대기업은 최근 금형사업부를 신설했다. 전자 제품에 금형이 필수이면서도 대거 필요해서다.

국내 한 완성차 업체의 경우 한 열처리 협력사의 우수기술을 빼앗아 자체 공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관련 중소기업은 결국 문을 닫았다.

자본주의의 좋은 점 중의 하나가 바로 분업이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고, 이를 하나로 합쳐 완성품을 시장에 공급하는 이 시스템이야 말로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3만여개의 부품을 완성차 업체가 모두 만들 수 있겠지만, 효율성이나 생산성 측면에서 분업보다 뒤진다. 현대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인 속도에서도 밀린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VIP(대통령)가 관례적으로 방문하는 곳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다. 이곳에서 VIP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항상 공언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랬다. 문제는 이 같은 정책을 피부로 느끼는 중소기업이 적다는 데 있다.

현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으로 이를 내세웠다. 다만, 문 대통령은 관련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별도의 부처를 만든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현재 국내 3D프린팅 산업이 큰 규모가 아나라 아직 대기업 진출이 없지만, 관련 시장이 확대될 경우 대기업 진출은 필연이다. 현재 3D프린팅 시장을 주도 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시장 수성은 어려울 것이다.”

국내 첫 3D프린팅 제작 업체인 캐리마의 이병극 대표의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제는 좀 달라졌으면 한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상당하다 ”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의 99%를 이루는 중소기업이 전체 고용 가운데 88%를 맡고있다. 정부가 고라니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고라니의 개체가 급증할 경우 생태계는 파괴 되겠지만, 이는 자연계에 해당한다. 경제계에서는 중소기업이 증가하면 증가할 수록 체질이 더욱 건강해진다. 유럽연합(EU) 경제의 버팀목인 독일처럼 말이다.

본지가 현장에서 만난 뿌리인들은 한결같이 “언제 뿌리산업의 전성기가 있었나요? 항상 어려웠죠”라고 말했다.

새 정부가 되새김질 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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