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주물(鑄物) 장인 공간미술 박상규 대표, 6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

38년 주물(鑄物) 장인 공간미술 박상규 대표, 6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

  • 뿌리산업
  • 승인 2017.06.2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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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엄재성 기자 jseom@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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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등 전국의 1만 여개 금속 조형물 제작한 조형물 제작 전문가

공간미술 박상규 대표. (사진=고용노동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등 전국의 1만 여개의 금속 조형물을 제작해 온 38년 경력의 주물(鑄物) 장인인 공간미술 박상규 대표(만 51세)가 고용노동부(장관 이기권)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사장 박영범)이 주관하는 6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됐다.

“금속 조형물은 디자인과 설계가 아무리 좋아도 주물(鑄物)이 나쁘면 작품 가치를 잃게 됩니다. 작품의 생명을 결정하는 작업이 주물입니다. 한국적이면서 품위 있고 세세한 부분까지 형상화 할 수 있는, 몇 백 년이 지나도 국보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형물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라며 주물 장인으로서의 포부를 밝힌 박상규 대표는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안도 마다하고, 주물 공장에서 자신의 뜻을 펼친 한국 주물업계의 산 증인이다.

박상규 대표는 공고 졸업 후 사촌형이 운영하는 주물 작업장에서 쌓은 기술과 경험을 살려 지난 2000년 금속조형물 제조업체인 ‘공간미술’을 창업한 이후,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보수, 국회의사당 내 무궁화 모양 '국회 상징표지' 제작, 국내 최대 입상인 완도 '장보고 동상' 제작 등으로 조형물 제작 분야에서 기술을 인정받고 있는 숙련기술인이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찌감치 취업하기로 진로를 정한 박상규 대표는 중학교 3학년 때 사촌형이 운영하던 주물 작업장에서 조형물을 제조하는 것을 보고, 거의 매일 공장에 갔다.

이 때부터 박 대표는 주물을 배우기로 하고 순천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설계, 제도, 판금, 선반, 용접, 주물 등 기계 분야의 기본 과정을 모두 배웠고 2학년 2학기 때 주물반에 들어가 전공으로 주물 기술을 익혔다.

고교 졸업 후 박 대표는 알루미늄을 녹여 창틀에 쓰는 새시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해 성실성과 능력을 인정받았다. 한 때 전기 금속 재료를 만드는 대기업에 스카우트되기도 했지만, 자신의 능력과 뜻을 펼치기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이후 박 대표는 주물 작업장을 운영하던 사촌형으로부터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는 작업장을 10년 안에 세계적인 조형물 제조회사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사촌형에게 적극적인 시설투자를 제안했다.

당시 대부분의 주물 공장은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거의 수작업으로 작업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박 대표와 뜻을 같이 한 사촌형은 4천여 평의 부지를 얻어 공장을 새로 지었다. 조형물 제작에 필요한 최신 시설을 도입하고 연구실도 만들며 7년 간 사업을 열심히 키워나갔다.

하지만 불행이 닥쳤다. 사촌형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회사를 나와 전국의 조형물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일하게 되었다.

어려움을 겪던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지인의 ‘실력이 녹슬기 전에 작더라도 직접 작업장을 만들어보라’는 조언이었다. 용기를 얻은 박상규 대표는 2000년 수중에 있던 300만원으로 창업했다. 그렇게 지금의 박 대표를 있게 한 ‘공간미술’이 탄생했다.

경기도 김포의 150평짜리 돼지 막사를 월세로 빌려 직원도 없이 아내와 단둘이 밤낮없이 일을 했다. 조형물 제작 의뢰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직원도 채용하고 공장 환경도 조금씩 개선했다.

하지만 신도시 개발 등의 이유로 공장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두 번이나 생기며 정착이 힘들어졌다. 이를 계기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부지를 마련해 공장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하고 2008년 현재 회사 소재지인 경기도 이천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당시에는 주물 작업장의 90% 이상이 무허가 상태에서 제대로 설비도 갖추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었죠. 하지만 우리 회사는 공장등록과 환경영향평가 등의 법적 절차를 제대로 거쳤습니다. 부서도 일반 주조부, 정밀 주조부, 스테인리스부 등으로 나눠서 업무를 세분화했죠. 제대로 된 체계와 설비를 갖추고 나니 일에 전력할 수 있게 되더군요.”

박 대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울 광화문 광장의 상징인 "세종대왕 동상" 및 "측우기와 해시계 모형"(’09년), 국회의사당 국회의장석 뒤편에 붙어 있는 무궁화 모양의 "국회 상징표지"(’15년) 등이 있다. 붕괴 위험에 처한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긴급 보수(’10년)하기도 했다.

그 외에 국회의사당 내부 홀에 있는 "제헌국회의원 198명의 청동 부조", 국내 최대 입상인 "완도 장보고 동상"(38m) 및 국내 최대 높이의 현대 조각 작품인 "김천 청동 다리 조형물"(22m) 등 생활 속에서 쉽게 보고 감상할 수 있는 조형물을 전국에 1만 개 이상 제작했다.

자신이 제작한 조형물을 보여주고 있는 박상규 대표. (사진=고용노동부)

박 대표는 조형물을 단순히 쇠로 만든 제품이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쇳물 아티스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형물 디자인을 쇠로 구현하는 주물 작업에는 장인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상규 대표는 해외에도 조형물을 수출해 왔다. 영국 벨파스트 항구에 설치된 12m 크기의 해마상이 대표적이다. 또 북경, 상하이 등 중국 각지에 말 동상 50여 개를 만들어 수출하기도 했다.

그는 해외 수출 시 철저하게 국내에서 조형물을 만든 후 해외로 보내는 방식을 추구한다. 해외 현지에서 제작하면 자신이 평생 일궈놓은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중국에서 연봉 3억원에 작품마다 일정액의 개런티를 보장하고 가족 체류비용까지 대줄테니 중국에 와서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조건이었지만 거절했어요. 우리나라 고유의 조형물 제조 기술을 젊은 장인들에게 전수하고, 전 세계에 우리의 조형물을 알리고 싶은 꿈이 있었거든요.”라며 돈에 연연하기 보다 한국의 기술 발전에 힘쓰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박 대표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경기도 안성에 1만4,000평 규모의 주물 작품 전시관을 조성하고 있다. 그동안 모아놓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교육관, 체험관, 연구관 등을 만들어 젊은 장인들을 양성할 계획이다. 외국인들을 불러 우리나라 주물 예술을 보여주고 조형물 수출의 장으로 만들 포부도 갖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에 아름다움을 기증한다는 생각으로 학교, 길거리, 저수지 등에 조형물을 세워 지역 주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조형물 제작업계에서는 높은 수준의 임금을 유지하는 등 직원들의 복지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박 대표는 직업기술학교(전문건설공제조합 기술교육원, 충북 음성 소재)에서 매년 학생 2~4명을 추천받아 직원으로 채용해 조형물 제조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2010년부터 대구카톨릭대학교와 산학협력을 체결하고 기술 지원도 하고 있다.

박상규 대표는 “우리 청년들이 대기업 취업에만 연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원망하고 자책만 하기 보다는, 자신이 택한 분야에서 재미를 느끼며 뚝심을 갖고 매진했으면 해요. 그러다 보면 오직 실력으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라며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고 정진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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