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정상화, 뿌리업계의 해결 방안은?

납품단가 정상화, 뿌리업계의 해결 방안은?

  • 뿌리뉴스
  • 승인 2018.03.2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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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엄재성 jseom@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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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업 갑질·업체 간 과당경쟁 등으로 납품단가 현실화 어려워
업계 자구노력·정부의 정책적 노력·수요기업 인식 개선 등 3박자 맞아야 해결 가능

 뿌리산업계를 비롯한 국내 중소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등 새 정부의 노동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우리도 정부 노동정책의 취지는 공감한다. 하지만 납품단가가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중소기업들의 어려움만 가중시킬 뿐이다”

 본지가 지난해 새 정부 출범 이후 주조·소성가공·금형·용접·표면처리·열처리 등 6대 뿌리산업계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뿌리업계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납품단가 현실화 등 실질적인 경영여건 개선이 뒤따라야 가능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주물업계는 생산 중단 등 단체행동 나서
 타 업계는 뚜렷한 대책 없어 ‘속 앓이’

 최근 2~3년간 주력산업인 조선과 자동차산업 등이 부진을 겪으면서 국내 뿌리업계는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 게다가 최저임금의 대폭적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원부자재 가격 급등,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등 제조원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상당수 업체들이 적자를 겨우 면하는 상황이다.

 국내 뿌리업계 중 납품단가 정상화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만한 대응을 하고 있는 곳은 주물업계이다.

▲ 주물조합은 지난 2월 총회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분 등을 반영하는 납품단가 정상화를 대기업과 정부에 촉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사진=뿌리뉴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이사장 서병문)은 2월 2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개최한 ‘제37회 정기총회’에서‘납품단가 정상화 결의대회’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분 등의 납품단가 즉각 반영을 촉구했다.

 주물조합에 따르면 중소주물업계는 지속적 산업경기 침체로 인해 기간산업의 근간인 주조산업의 최근 5년간 매출액이 -31.7%나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 및 고정경비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고, 정부고시 최저임금 인상률 및 계절별 차등요금에 의한 전기료 추가상승분(여름 3개월, 겨울 4개월)으로 인한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게다가 원부자재 가격까지 폭등했음에도 대기업은 아직도 납품단가를 현실화시키지 않고 있어 중소주물업계 전체가 존폐기로에 처해 있다는 것이 주물조합의 입장이다.

 이에 주물조합은 최근 10년간 정부고시 최저임금 인상률 99.7%, 계절별 차등요금에 의한 전기료 추가상승분 30%에 대한 납품단가 인상 반영을 촉구하고, 3월 23일까지 대기업이 최저임금 인상분 등을 합리적으로 반영하여 납품단가를 인상해 주지 않을 경우 3월 26일부로 공장가동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물조합은 지난 2008년에도 단체행동을 통한 ‘생산 중단’을 결의하고, 수요대기업들로부터 납품단가 인상을 이끌어낸 바 있어 이번 행보에 중소기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반면 다른 5개 업종은 별 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조합마다 총회를 통해 어려운 경제상황을 강조하고, 이를 타개할 방법을 찾자고는 하지만 납품단가 정상화와 관련해서는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납품업체 바꾸면 된다”는 수요대기업 눈치에 적극적 의견 표출 어려워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납품단가 인상 사실상 불가능” 지적도

 이와 관련하여 익명을 요구한 단조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뿌리산업계의 경영난 타개를 위해 납품단가 정상화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소기업이 대다수인 뿌리업계에서 수요 대기업의 눈치가 보이는 마당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물업계의 경우 한 공단 내에 많은 업체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단합이 잘 되는 편이다. 그래서 생산 중단 등을 통한 납품단가 협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타 업종의 경우 동시 생산 중단 등의 해법을 선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개별 뿌리기업으로서는 수요 대기업이 ‘당신들 생산 중단하면 우린 납품업체 바꾸면 된다.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으로 나올 경우 사실상 대처할 방법이 없다. 납품단가 현실화가 필요한 것을 알면서도 주물업계를 제외한 뿌리산업계가 ‘침묵모드’로 일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에서는 뿌리업계에 만연한 과당경쟁으로 인해 납품단가 현실화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고 있다는 탄식도 나온다.

▲ 뿌리업계에서는 수요기업들의 갑질 외에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납품단가 인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은 경남지역 한 열처리업체의 생산라인. (사진=뿌리뉴스)

 경남지역에서 열처리업체를 운영 중인 A대표이사는 “국내 뿌리업계에는 업체 수가 통계에 잡히지 않을 만큼 많은 업체들이 있다. 열처리업계만 해도 열처리조합 회원사는 100여개사 정도지만 실제 영업 중인 열처리업체는 1천개사 이상이다. 업체 수로만 보면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큰 일본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상황이다. 이는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인데, 특별한 기술력이 없이 고만고만한 업체들이 워낙 많다 보니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반한 저가수주가 만연한 상황이다. 사실상 업체 간 과당경쟁이 납품단가 현실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뿌리업계, 신기술개발 등 제조원가 절감 위한 자구노력 필요
 정부, 산업 구조조정·공정거래정책 강화로 기업환경 개선해야

 그렇다면 납품단가 문제에 대한 해법은 없는 것일까? 어렵기는 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뿌리업계의 제조원가 절감을 위한 자구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수요대기업들도 전 세계 시장에서 극심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내 중소기업들의 요구사항만 관철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조공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현익 삼천리금속 대표이사는 “국내 뿌리업계의 납품단가가 인상되면 대기업들은 해외에서 납품업체를 찾을 것이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더 저렴하고, 좋은 납품처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뿌리업계에서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공정기술 개발 등을 통한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로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다. 뿌리업계에서는 정부가 하도급법 개정 등을 통한 공정거래정책 강화와 함께 업체 간 과당경쟁을 개선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영길 주물조합 전무는 “기존에는 하도급법에 원부자재 가격만 납품단가에 반영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개정 법안에서는 인건비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체감을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인건비 상승분까지 납품단가에 반영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적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열처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공정거래법 집행을 강화해도 지나치게 많은 업체들이 과당경쟁을 하는 현실에서는 낮은 가격에라도 수주하려는 업체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환경 및 노동기준 등을 강화하고, 각종 인증기준도 상향 조정해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이 살아남아 파멸적인 과당경쟁이 아닌 상호존중적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요기업 인식 개선이 궁극적 해법” 목소리도 나와

 이와 같이 뿌리업계의 자구노력과 정부의 공정거래정책 및 구조조정 강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납품단가 문제는 결국 수요기업들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해결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인천 경서공단에 위치한 주물업체 B사의 한 실무담당자는 “국내 대기업들은 원자자재나 인건비 인상 등으로 납품업체들이 어려움을 겪더라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납품업체가 단가 인상을 요구하면 ‘말 잘 듣는 업체로 교체하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체행동에 나서더라도 ‘외국에서 수입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국내 제조업 기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납품단가 문제는 결국 수요대기업들이 ‘국내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곧 자신들의 경쟁력이라는 생각 하에 납품업체들의 경영상황이 악화되면 우리도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만 해결될 문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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