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추석 떡값에 대한 아련한 추억
황병성 칼럼 - 추석 떡값에 대한 아련한 추억
  • 황병성
  • 승인 2021.09.0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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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가? 어리석은 자문을 해 본다. 디지털 시대에 익숙해지면서 몸은 편안해졌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늘 허전했다. 아날로그 시대의 아련한 향수(鄕愁)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치 낡은 장롱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사진첩을 꺼내 보듯 가끔 옛날 직장 시절이 그리웠다. 흑백으로 된 편린의 추억 속 그때는 흐뭇한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다. 박봉으로 힘겨웠지만, 마음은 부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노란 봉투로 된 월급을 받던 때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빳빳한 현금으로 채워진 월급봉투를 받을 때 기분은 비속한 말로 째졌다. 한 달 내내 고생한 대가를 받는 것이니 성취감도 컸다. 통장으로 들어오는 급여와는 느끼는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비록 다음날이면 쓰임에 따라 바닥났어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그리고 동료와 삼겹살에 소주잔을 나누며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로 다음 달을 기약하곤 했다. 비록 허름한 대폿집이었지만 젓가락 장단의 유행가가 유난히 구슬펐던 시절이었다.  

명절이 되면 근로자들의 마음은 설렌다. 고향을 찾는다는 기쁨과 ‘떡값’이 얼마나 나올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한쪽에는 설렘으로 마음이 들떠 있을 때 다른 한쪽은 걱정이 태산처럼 높았다. 형편이 좋은 회사는 덜했지만, 사정이 나쁜 경영자는 불면의 밤으로 고통스러웠다. 떡값은 우리 사회 관념상 미덕에 가까웠다. 직원들의 사기와도 연관이 있었기에 당연히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빛을 내서라도 챙겨주던 것이 떡값이었다. 감성이 깊숙이 내재한 사회적 관습을 거스를 수 없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디지털 사회로 급변했다. 월급은 통장으로 입금되고 떡값은 상여금에 포함한 업체들이 많아졌다.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가끔 그 옛날 아날로그 시대가 그립다. 떡값 봉투를 건네며 고향 잘 다녀오라고 악수하던 사장은 힘없이 말했다. “떡값이 아니라 떡갈비 값이라도 주고 싶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적게 넣었다”라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회사의 형편을 잘 알기에 “아닙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던 그 시절은 이제 낡은 추억이 됐다.

대기업은 노사 협의에 따라 떡값은 상여금이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더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던 미덕과 거리가 먼 듯싶다. 상여금으로 변신한 떡값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형편에 따라 책정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급여조차 주기 힘든 업체 사장에게는 명절이 부담스러운 것은 옛날과 같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여금 액수 차이로 느끼는 위화감도 여전하다.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은 세월이 흘러도 좁혀지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병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올해 대기업은 추석 상여금으로 154만 원을 계획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93만1천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금액에서 대기업은 이해가 되나 중소기업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경총의 조사처럼 돈을 주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중소기업 상여금은 스팸이 전부가 아닌가.”라는 어느 근로자의 직언처럼 조사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가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추석 전에 국민 88%에게 재난지원금 25만 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이 지원금이 떡값을 받은 듯 위안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곱게 볼 수만 없다.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올해 태어나는 신생아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1억 원이 넘는 나랏빚을 짊어질 것이라는 언론의 경고가 무섭다. 
그러나 그 돈의 쓰임이 누군가를 살리는 소생술(蘇生術)이 될 수 있다면 긍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떡값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올해 추석 떡값은 재난지원금으로 인식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추석이 저만치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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