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아름다운 퇴역(退役)
황병성 칼럼 - 아름다운 퇴역(退役)
  • 황병성
  • 승인 2021.09.2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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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웅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10여 년 만에 귀국한 그는 1951년 4월 19일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37분간 극적인 연설을 한다. 이 연설은 군인에게 주어진 전무후무한 고별 연설이었다. 뜨거운 박수로 무려 28번이나 중단되는 등 명연설로 유명하다. 비록 대통령과 이견으로 퇴역했지만, 그가 미국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는 얘기다.

특히 그의 연설 중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부분이 있다.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 시절 연병장에서 가장 즐겨 부르던 군가 중 하나의 후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후렴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아주 당당하게 외칩니다. 그 노래 속 노병처럼 이제 저는 군인 생활을 마감하고 사라져 갑니다.”의 내용 중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대목을 말하는 것이다.

그가 물러난 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수의 지지에도 끝내 그는 대통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1·2차 대전 승리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군인으로써 그는 지금도 미국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인천광역시 ‘자유공원’에 가면 그의 동상이 있다. 1957년 인천상륙작전 7주년을 기념해 국민 성금으로 건립한 동상이다. 이념 문제로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풍전등화와 같았던 전쟁 위기에서 우리나라를 구한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큰 은혜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 철강 산업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포스코 1고로가 퇴역(退役)을 앞두고 있다. 1973년 6월 9일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과 임직원들이 만세를 부르며 첫 출선의 기쁨을 나누던 그 고로가 50여 년의 여정을 마무리 한다. 군인으로 치면 노병의 신세가 된 것이다. 세계 최장기간 조업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역사적 상징성은 너무 크고 위대하다. 혹자는 1고로를 ‘산업 철기시대’를 연 일등 공신으로 평가한다. 그 말이 틀리지 않는 것은 지금 우리 철강 산업의 세계적 위상을 보면 확연하다.  

1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지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시작한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막중한 책임감도 따랐다. 이와 관련한 박태준의 명언은 길이길이 회자 되고 있다. “조상의 핏 값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조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해서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라는 비장한 각오 속에서 공사는 결행됐다. 결국 그 정신이 1973년 6월 9일 첫 쇳물을 생산한 원동력이 됐다. 

다만, 노병이 죽지 않고 사라지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1고로 처리를 두고 최고 경영진의 고민이 컸던 모양이다. 소문에 의하면 철강역사박물관을 만들어 보존하는 것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소문이 사실이 되기를 바라며 한편으로는 무척 다행스럽다는 생각이다. 고철로 취급되어 사라지는 설비를 무수히 봐왔기에 하는 기우(杞憂)이다. 외국의 경우 독일 제철소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도 있다. 포스코의 1고로도 보존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유네스코 등재 시도도 고려해 볼만하다.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석탄과 코크스를 원료로 쇳물을 생산하던 고로도 탄소 중립이라는 과제 앞에 변화의 몸부림이 거세다. 핵심은 수소이다.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수소 환원제철로의 전환은 절대 과제가 됐다. 이에 따라 국내 양 일관제철소는 이 공법의 실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피나는 노력이 뒤따르기에 종국에는 친환경 제철이라는 원대한 꿈이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어쨌든 우리 수요산업 발전에 젖줄 역할을 한 포스코 1고로의 그동안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아름다운 퇴역을 하기까지 엔지니어의 노력도 컸을 것이다. 고로가 쇳물을 쉼 없이 토해낼 수 있도록 닦고, 조이고, 기름 치며 50여 년 세월을 함께한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공로자이다. 더불어 1고로가 죽지 않고 우리들의 가슴에 살아 있음은 맥아더의 연설처럼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아름다운 퇴역은 사람은 물론이고 생명이 없는 기계조차도 존경스러워 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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