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허생전(許生傳)과 가격

황병성 칼럼 - 허생전(許生傳)과 가격

  • 철강
  • 승인 2021.12.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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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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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물건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돈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가격은 물건의 가치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이에 따라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피와 땀의 대가를 물건의 가치에서 찾는다. 하지만 그 가치가 터무니없이 책정됐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크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제값을 받고자 치열한 논쟁도 서슴지 않는다. 그 과정이 협상이고, 자신들의 주장을 반영하려고 애쓴다. 

피나는 노력에 의해 생산한 물건에 가치 있는 가격이 책정되지 않으면 억울하다. 특히 농부들이 그렇다. 한 여름 무더위와 싸워가며 농작물을 재배한 뒤 가을에는 결실의 보람을 느끼는 것은 순리이다. 그러나 가끔 텔레비전에서 수확해야 할 농작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장면이 나온다. 해당 농민의 인터뷰로 의문은 금방 풀린다. 가격이 너무 낮아 인건비를 들여 수확하는 것보다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났다고  절규한다. 지난해 좋은 값을 받은 경험에 올해 더 많이 재배한 것이 화근이었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진리를 몰랐던 것이다. 

박지원이 쓴 ‘허생전(許生傳)’은 또 다른 측면에서 가격을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인 허생은 10년 계획을 세워 공부에 몰두한다. 7년째 되는 어느 날 가난한 살림에 지친 아내가 그에게 도둑질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오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이에 그는 공부를 잠시 접고 장안의 갑부인 변 씨를 찾아가서 1만 냥을 빌린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경기도 안성으로 내려가 온갖 과일을 모두 사들인다. 이렇게 하자 한양에는 과일이 없어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 창고에 쌓아두었던 과일을 시장에 비싸게 팔아 큰 이윤을 남긴다.

지금은 위법인 사재기를(매점매석) 통해 돈을 번 것이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판 허생원의 기지(機智)가 놀랍다. 비록 풍자소설이기는 하지만 가격의 가치를 제대로 깨우쳐 준다. 그의 상술을 본 거간꾼이 다음은 쌀을 사서 장사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 말을 들은 그는 “과일은 사대부들이 주로 소비하지만 쌀은 서민들도 소비하는 것이니 내가 어찌 그들에까지 이윤을 남기는 장사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거절한다. 혼자 잘 살자고 장사를 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베풀려고 한 것은 나중에 밝혀진다. 가격을 높여 이윤을 챙긴 이유가 있었다.

우리 업계에도 가격은 항상 최대 화두(話頭)이다. 특히 가격 책정에 수요업계와 상대해야 하는 특성상 을(乙)의 입장이어서 협상 테이블은 늘 한쪽으로만 기운다. 물건을 파는 사람보다 사는 사람이 상전 노릇을 하는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가격을 올려달라면 펄쩍 뛰며 갖은 핑계로 거부한다. 실상 그 속을 들어다 보면 비교적 넉넉한 살림인 데도 말이다. 이에 가격 협상 타결은 제때 이뤄지는 법이 없다. 시간을 끌며 진을 다 뺀 후에야 찔끔 올려주는 것이 관행처럼 됐다. 이 때문에 우리 업계는 경영이 악화되지만 수요 업계는 그렇지 않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생의 협상이어야 하는데 혼자만 살겠다는 것은 협상이 아니다. 이러한 협상에서 가격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더 큰 문제는 협박에 가까운 협상 카드이다.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수입재로 대체할 것이라는 도를 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이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요구로 설비를 증설했지만 가격이 맞지 않는다 하여 수입재로 충당하는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행동에 우리 업계의 심정은 농작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농부와 다르지 않다.  

허생원이 가격을 올려 판매한 것은 혼자 잘 살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윤을 남겨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서다. 이에 비춰 수요업계의 혼자만 잘 살겠다는 아집(我執)은 큰 문제다. 이는 피와 땀의 대가를 물건의 가치에서 찾으려는 우리 업계의 생각과 너무 배치된다. 더구나 제시하는 가격이 합리적인 데도 말이다. 원자재 가격이 오른 만큼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기초적인 경제 상식이다. 그 상식을 모르는 수요업계야 말로 허생전을 읽고 또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물건의 가치와 상생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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