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구로공단과 가발 수출

황병성 칼럼 - 구로공단과 가발 수출

  • 철강
  • 승인 2022.12.1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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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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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隔世之感)은 우리 수출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가발이 주력 수출이던 나라가 최첨단 반도체가 주력 수출품이 됐으니 적합한 비유일 것이다. 100억 달러 돌파를 국가 수출 목표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천 달러가 목표였다. 그 목표는 1977년에 달성했다. 그 후 43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는 수출 6천억 달러(779조)를 넘어서며 세계 6위 수출 대국으로 부상했다. 그야말로 일취월장(日就月將)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하지 못한 일을 우리는 기어코 해냈다.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성과였다. 무엇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가난한 나라에서 처음 수출을 장려한 것은 경공업이었다. 가진 것은 노동력밖에 없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력과 뛰어난 손기술로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하면서 실적을 끌어올렸다. 그 상징적인 예가 가발이었다. 이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수출을 증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의류와 신발 등 경공업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도 알아주는 제품이 됐고,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경공업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은 것은 우리 민족의 뛰어난 손기술이 한몫했다.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손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한지나 나무로 만든 공예품과 고려청자 같은 도자기만 봐도 이것이 입증된다. 이 경공업을 발판 삼아 다음으로 발전시킨 것이 중화학 공업이었다. 더불어 중동 건설 붐이 일면서 수출 대국으로 가는 꽃길이 열렸다. 하지만 복병도 만만치 않았다. 1970년대 석유파동과 1997년 외환위기는 수출에 먹구름이 드리우게 했다.

그러나 이 장애물도 결코 우리의 수출 길을 막지 못했다. 우리 국민들은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세계로 나아갔다. 가발을 만들던 손재주로 반도체를 만들고, 대장장이의 장인 정신으로 철강을 생산했다. 거북선을 만들었던 조상들의 지혜가 세계 1위 조선 산업을 견인했고, 도자기를 빚고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만든 기술력이 자동차 산업과 가전산업, 여타 산업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했다. 협소한 국내 시장과 적은 자원, 불리한 지정학적 요건을 극복하고 일군 신화였다.   

올해 우리나라는 10대 교역국 중 수출증가율 5위를 기록했다. 수출이 2년 연속 6천억 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달성한 가운데 세계 수출 순위가 작년 7위에서 6위로 올라설 것이 확실하다. ‘제59회 무역의 날’에 수많은 기업들이 공로를 인정 받아 수출의 탑을 받았다. 우리 철강금속 업계 많은 업체들도 자랑스럽게 자리했다. 원자재와 소비재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군 성과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그 노고에 박수가 아깝지 않은 이유다. 당연히 뜨거운 박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수출이 많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과제도 있다. 무역수지의 적자 반전이 시급하다. 적자 원인이 에너지 가격 상승 때문이지만, 국내 에너지 과소비 구조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 이 구조를 개선하려면 에너지 절약운동을 확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수출은 늘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우리 경제의 근간이자 일자리의 원천이기도 했다. 자원 하나 없는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 필연적으로 선택한 것이 수출이다. 그렇기에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수출 확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6위에서 만족하지 말고 또다시 5위로 치고 올라가야하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급속도로 변화한 구로디지털단지의 옛 이름은 구로공단이다. 농촌에서 올라온 여공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출 역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지금은 모두 할머니가 되었고, 그 시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없다. 1971년 이곳에서만 1억 달러가 넘게 수출됐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이 수출 대국 원동력이 됐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역의 날을 맞아 새삼 그들의 공로를 기린다. 역사는 더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 가끔 소환된다. 구로공단 여공들이 터를 닦은 수출의 길이 큰 결실로 이어진 지금 그 역사가 더욱 위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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