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철근을 외면한 ‘순살 아파트’

황병성 칼럼 - 철근을 외면한 ‘순살 아파트’

  • 철강
  • 승인 2023.08.0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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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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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가문인지, 본관이 어디인지, 자신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내세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족보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하며 ‘뼈대 있는 가문’ 임을 자랑한다. 이에 족보는 가문을 증명하는 소중한 증표가 됐다. 족보가 있다는 것은 양반의 가문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족보는 양반 신분과 상관없이 만들어진 것이 많다고 한다. 이것은 뼈대 있는 가문이 되고자 했던, 지극히 체면을 중요시 여겼던 조선시대의 풍습이 오늘에 이어진 것이다. 

왕대밭에 왕대 나고 쑥대밭에 쑥대 난다고 했다. 좋은 가문의 내력은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황희, 황윤길, 황진은 어떤 사람이고 서로 어떤 관계일까? 청백리로 알려진 황희는 조선 태종과 세종시대 명재상으로 유명했다. 황윤길은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장차 일본이 침략할 것임을 알린 사람이다. 황진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웅치전투, 이치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끝까지 분투하다 전사했다. 이들은 모두 장수 황 씨다. 황진은 황희의 5대손이고, 황윤길은 황진의 5촌 당숙이다. 이들이야말로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근본이 중요하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고 버티려면 더욱 그렇다. 이에 ‘뼈대’는 사람과 사물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온갖 풍상을 견딜 수 있게 하고, 모진 세파를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만약 이것이 튼튼하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철강재 중 건축물의 뼈대 역할을 하는 제품을 들라면 철근이 제일 먼저다. 사람으로 치면 뼈에 해당한다. 철근은 콘크리트가 하중으로 터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건축물을 지을 때 철근의 존재감은 크다. 철근은 크기와 명칭, 용도와 모양, 사용처에 따라 다른 크기로, 다른 명칭으로 불린다. 철근의 소재는 탄소강이다. 해양구조물 등 해수에 노출될 시 에폭시 도막 철근이나 아연 도금 철근,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철근, 더 높은 부식 환경에서는 섬유 에폭시 수지 분체 철근이 주로 쓰인다. 건물을 지을 때는 콘크리트와 찰떡궁합이다. 철근은 콘크리트로 부족한 인장강도를 담당한다. 튼튼한 건물을 짓는데 필수인 복합자재로 이름을 드날린 지 오래다.

우리나라 최초 콘크리트 철근으로 지어진 건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1910년 11월 준공된 부산세관 청사가 첫 번째이다. 철근 콘크리트로 구조를 잡고 러시아산 붉은 벽돌로 외부 마감한 건물이었다. 이때 지어진 건물은 1979년 부산대교 건설로 남아있지 않고, 꼭대기 종탑 부분만 떼어내서 현재 부산본부세관 앞마당에 전시 중이다. 1912년 1월 준공된 한국은행 본점은 현재까지 남아 사적 280호로 보존되고 있다. 이처럼 콘크리트와 철근은 태생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두 관계는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부부 사이와 같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만약 둘 사이가 이것이 어그러지면 관계는 파탄난다. 철근과 콘크리트도 마찬가지다. 서로 단점을 보완해 주어야 튼튼한 건축물로 오래 간다. 이 둘의 관계를 강제적으로 끊어 놓은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사람들은 철근이 누락된  ‘순살 아파트’ 적발에 아연실색했다. 인천 검단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를 조사하면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국가가 관리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LH는 부랴부랴 전국의 건설 또는 입주 단지 가운데 무량판 구조로 시공된 아파트 점검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남양주 한 아파트에서 지하 주차장 일부 기둥에 보강 철근이 빠진 것을 확인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LH 발주 91개 단지 중 15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전단보강근’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입주한 주민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다. 주민들의 안전을 무시한 부실시공은 당연히 책임을 물어서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 국가의 무한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

이 사건은 철근의 명성에 흠집을 낸 것이다. 철근이 덜 들어간 뼈대 약한 건물은 무너지게 돼 있다. 검단 아파트 주차장이 이것을 입증했다. 더불어 철근의 중요성도 입증됐다. 1853년 프랑스 사업가 프랑수아 쿠아녜가 파리시 외곽에 세계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지었다. 이후 대대로 철근은 가문의 영광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뼈대 있는 가문의 역사를 자랑하는 철근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위대한 존재감에 더 이상 먹칠을 하는 잘못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적인 대책 마련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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