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치다가…

울타리를 치다가…

  • 철강
  • 승인 2023.10.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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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손유진 기자 yjson@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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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단출한 1인 가구에 강아지 한 마리와 토끼 한마리가 새가족이 됐기 때문이다. 

꼭대기층인 우리 집에는 야외 테라스 난간이 뻥 뚫려있었다. 높이뛰기를 잘하는 토끼, 미쳐날뛰는 강아지, 조증이 있는 주인을 위해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천막을 에두르다 무재해는 없는 우리 철강업계가 또 떠올랐다. 울타리를 치는 데는 1시간이면 될 줄 알았지만 정작 한 달이 걸렸다. 보수 공사는 매일 계속된다.

처음 천막으로 울타리를 에워싸놓고 흡족해했다. 개가 천막으로 고개를 밀어 넣기 전, 토끼가 높이뛰기 일일 신기록과 도움닫기 뛰기를 하는 것을 목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철망을 덧대고 끈을 동여매고 CCTV로 실시간 확인도 했다. 사실 나머지는 ‘동물 팔자’에 맡기려 했다.

우리 철강업계 생각이 났다. 지난해 안전예산으로 1.4조를 쏟아붓고도 상습적인 중대재해 업종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소명 기회에서는 “충분히 교육했다, 외주업체 직원이다, 작업지시 위반이다”라고 집단 교육을 받은 것처럼 똑같은 대답을 한다. 또 5억원의 산재보상금과 함께 과도한 과징금은 제강사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변론을 하는가 하면, 물적분할 이전에서의 산재사고에 대한 피고인 자격 의무를 두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하다.

우리 철강업계는 중대재해 예방보다는 사후약방문에 더 능한 것 같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안전사고 없는 테라스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는 한 동물 주인이 한 말 거들자면, 산재에 예방에는 생산 현장의 직원들을 ‘물가에 내놓은 자식’처럼 여기는 것이 해답이 될 것이다. 기업 수장과 안전보건환경 담당자들이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무재해 꿈은 꿔볼 수 있을 것이다. 

손 기자는 ‘물가에 내놓은 동물자식’들을 위해 오늘도 울타리를 고쳐매고 주변 환경 정리를 한다. 솔솔 바람에도 놀라 파라솔을 접어둔다. 비가 오는 날이면 물기를 닦아내느라 바쁘다. 스무개 남짓 매여있었던 케이블 타이 갯수는 벌써 백개가 훌쩍 넘었다.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해 나의 실수가 씻지 못할 아픔이 되지 않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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