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정년퇴직의 明과 黑

황병성 칼럼 - 정년퇴직의 明과 黑

  • 철강
  • 승인 2024.03.2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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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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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항상 설렘을 동반한다. 특히 계절의 변화가 그러하다. 단풍이 곱게 물던 가을이 무르익으면 눈 덮인 겨울의 낭만이 기다려진다. 언 강 위를 몰아치던 칼바람이 잦아들 때쯤 활짝 꽃망울을 터트리고 오는 봄이 기다려진다. 자연의 이치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우리 인생사와 다르지 않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울고 웃는 인간의 삶과 닮았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풋풋한 신입사원에서 시작해 연차가 쌓이면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된다. 그리고 임원이 되면 직장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잊히기 위한 연습에 들어가는 것이다. 

정년퇴직은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쳐올 미래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는 충격이고 슬픔이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인생을 꿈꾸게 하는 희망일 수 있다. 모두가 후자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저마다 사정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 퇴직 후의 삶에 대해 준비를 잘 한 사람들은 퇴직이 기다려질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퇴직이 곧 절망일 수 있다. 그 딱한 사정을 다 열거하지 않아도 무엇이 문제인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렇듯 준비하고, 준비하지 않은 삶은 퇴직 이후 인생의 질을 좌우한다. 

정년퇴직은 축복이다. 일단은 회사의 경영이 튼튼해야 가능하다. 다음은 그 사람의 능력을 회사가 인정해 주었다는 얘기다. 50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명예퇴직의 칼날을 맞은 사람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이에 정년을 채운다는 것은 격랑의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힘겹고 어렵다. 정년까지 회사 생활을 한 것이 성공한 삶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정년을 채우기까지 회사가 망하지 않고 존재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이것은 퇴직한 사람이나 앞으로 퇴직할 사람에게도 중요하다. 회사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기 때문이다.

‘퇴직을 축하한다.’라는 말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다. 정년퇴직 자에게는 두 가지 감정이 혼재한다. 반평생 넘게 한 회사에서 근무하다 명예롭게 퇴직하는 것은 축하 받을 일이다. 하지만 근심과 걱정이 뒤따르기도 한다. 퇴직 후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전술한 바와 같이 준비를 잘한 사람은 걱정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퇴직과 동시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절박함과 맞닥뜨린다. 퇴직이 쉼이 아닌 또 다른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에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퇴직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퇴직연금 수령을 두고 말이 많다. 이 연금의 궁극적인 목적은 노후 보장이다. 일시금보다 나눠서 받는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90% 이상 퇴직자는 일시금으로 받기를 원한다고 한다. 노후 보장이 아니라 퇴직 시 받을 수 있는 목돈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주택 구매를 위한 중도 인출도 많다. 일시금으로 받는 것은 퇴직 후 사업자금과 융자금 변제가 대부분 용도이다. 퇴직 후 삶이 안정적이지 못한 것은 이런 사유(思惟) 때문이다. 퇴직금이 노후를 보장해 주기는커녕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104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백 년을 살아보니’ 저서에서 젊어서는 용기, 늙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정년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일선에서 물러나고 선한 의욕이 과욕으로 옮겨가는 것을 자제할 수 있게 한다. 꼰대 소리를 들어가며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한 강제적인 제도이기도 하다. 어른으로서 아랫사람과 잘 어울리는 지혜를 찾아가는 최초 문턱을 넘는 것이 정년퇴직이다. 이 새로운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펼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는 것이 필수다. 백번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우리 부모세대는 노후를 자식들에게 의존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부모는 먹지 않고 자식에게 주지만, 자식은 먹고 남아야 부모에게 준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노후가 힘겨웠다는 얘기다. 노후가 가난한 최대 원인은 자식들 때문인데도 말이다. 영국속담에 ‘자식을 얻은 기쁨은 잠시뿐이고 그 대가는 길고 혹독하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자식에게 의존하는 노후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자식이었던 우리 스스로가 깨우쳤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반성하지만 때늦은 후회가 된다. 우리가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철저한 준비밖에 없다.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찾아올 정년퇴직이 아름답고 풍요한 제2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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