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강시장의 질서가 바뀌고 있다.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 체계를 강화해 철강 제품에 수입가격 기준 50%의 관세를 매기고, 파생제품과 일부 산업설비에도 품목별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본격 시행해 탄소를 많이 배출한 철강에 추가 비용을 부담시킨다. 일본도 한국과 중국산 용융아연도금강판에 최고 55.3%의 잠정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열연·냉연강판 조사까지 진행 중이다.
방식은 달라도 자국 산업과 공급망을 지키겠다는 목적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만 저가 수입 철강에 느슨하게 대응한다면 시장 개방이 아니라 산업 기반의 일방적 양보가 된다. 덤핑 제품이 국내 가격을 끌어내리고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키면, 한번 무너진 생산 기반은 관세 몇 번으로 되살리기 어렵다. 당장의 값싼 원료가 장기적으로는 공급망 종속과 기술 경쟁력 약화라는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실제로 중국산 특수강봉강 수입은 2022년 45만273톤에서 2025년 67만5,824톤으로 약 50% 늘었고, 같은 기간 국내 업체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다. 최근 무역위원회가 최대 27.96%의 잠정덤핑방지관세를 추진하는 것은 특정기업 특혜가 아니라 왜곡된 가격 경쟁을 바로잡고 필수 소재의 생산 기반을 유지하려는 최소한의 방어다.
문제는 규제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중국 업체들이 반덤핑 품목인 냉연 소재 도금강판을 규제 밖의 열연 소재로 공급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은 우회 수입이 현실적 위험임을 보여준다. 제품명과 서류만 바꾸고 실제 원판과 제조공정이 그대로라면 무역구제 조치는 껍데기에 그친다. 품질검사증명서와 원산지 자료를 대조하고, 박물 제품의 원소재와 공정을 정밀 검증하며, 허위 신고가 확인되면 관세 추징과 제재를 엄정히 집행해야 한다.
보세공장도 사각지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수출용 원재료의 관세를 유예하는 취지는 존중하지만, 반덤핑 대상 열연강판을 약간 가공해 비과세 제품으로 국내에 유통하는 통로가 되면 안된다. 규제 시행 뒤 열연의 보세 반입 비중이 급격히 늘었다는 업계 추정은 제도 점검이 시급하다는 경고다. 보세 제품이 국내로 반입될 때 원료에 과세하는 원칙을 법제화하고, 특별허가 심사에 무역구제 회피 의도와 국내 유통 가능성을 반영해야 한다.
물론 원재료비가 제조원가의 약 60%를 차지하는 단조업계나 중국산 소재를 쓰는 조선업계의 부담도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덤핑을 방치할 수 없으니 정교한 보완책을 병행해야 한다. 국내에서 즉시 대체하기 어려운 규격에는 한시적 유예와 제한적 할당을 검토하고, 수출용 원재료는 실제 재수출 여부를 철저히 사후 관리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 철강사의 공급 확대와 장기계약, 수요업계의 전환 비용 지원을 묶어 철강과 수요산업이 함께 버틸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이 중국산 소재를 조금 가공해 제3국으로 내보내는 우회기지로 인식되는 순간, 우리 수출품까지 더 강한 원산지 조사와 관세 장벽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철강뿐 아니라 국가 통상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정무역을 지키는 규제는 보호주의 구호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와 수출시장을 함께 지키는 안전장치다.
저가 철강재 수입 규제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관세율 하나가 아니라 품목 전환, 허위 신고, 보세공장 악용까지 막는 촘촘한 집행 체계다. 세계가 자국 철강을 지키기 위해 장벽을 높이는 지금, 한국의 머뭇거림은 신중함이 아니라 위험한 지연이다.

